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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타령
꽃 타령
  • 김루어
  • 승인 2013.03.21 16:5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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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 루 어
 봄이 되면 나는 몸부터 아프다. 좋게 말하면 봄을 타는 것이겠지만, 실제는, 고질인 허리가 기온변화에 반응하는 것이라 한다.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거리녹지에는 봄꽃들이 수줍게, 혹은 화들짝 피어 있다. 개나리, 금잔화, 팬지 그리고 벚꽃…… 내가 좋아하는 목련도 피어 있다. 나이만큼 맞는 봄이지만, 꽃들로 하여, 봄은 오히려 나이만큼 새롭다. 그리고 놀랍다. 지난겨울의 그 엄혹함을 견디어 내고 노랑저고리, 발간 볼,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천진스레 피어오르는 저 봄꽃들의 미소가.
 봄꽃은 스무 살 처녀 같다. 수줍어하면서도 도발적이고, 신선하면서도 당돌하게, 까르르 웃어대는 스무 살 처녀! 그러나 유념할 일이다, 이 처녀들 웃음에 있는 전염성을. 누구든 이네들 웃음 속으로 들어가면 즉각 전염된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까진 없다. 이 전염바이러스는 불로(不老)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아픈 허리에도 불구하고 걷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 처녀들 웃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칠십이나 되는 노인처럼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나도 스무 살 처녀로 돌아가는 기분이 된다.
 하지만 기분만 그럴 뿐, 한 시간을 못 가 도로 옆에 조성된 녹지 앞 벤치에 앉고 말았다. 허리 때문이다. 녹지에는 개나리꽃이 무리로 피어 있다. 여인네 서넛이 수다를 떨며 저쪽 벤치에서 그 꽃들을 꺾어 신문지에 싸고 있다. 어떤 여인은 꺾은 꽃이 한 아름이다. 그런데, 꽃 꺾어 안은 그네가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그네들과 잠시라도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 벤치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원치 않게 그네들에게 가야만했다. 문득 부는 바람에, 그네들이 꽃을 싸던 신문지 한 장이 공교롭게도 내게 날려 왔던 것이다.
 물리치료를 받으면서도 내내 마음이 어두웠다. 또 도진 것이다, 내가 걷어 낼 수도 없는 어둠을 생각하는 과대 망상벽이. 원인은 그네들에게 신문을 넘겨줄 때 눈에 든 기사였다. 취업고민 20대 자살. 며칠 전에 이미 본 기사. 하지만, 이런 기사는 두 번째 본다고 덤덤해지지 않았다. 얼마 전에 20대 4명이 동반 자살한 기사를 본 충격까지 되살아났다. 통계청발표에 따르면, 2011년 청년자살률 1위를 포함한, 한국인 평균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1위, 그것도 9년 연속 1위였다.
 그렇다, 한국인들이 너무 쉽게(?) 죽어가고 있다. 진학문제, 취업문제, 경제적 고통, 개인문제…… 등등으로. 10대 소년이, 20ㆍ30대 청년이, 40ㆍ50ㆍ60대 장년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노인 자살률은 청년 자살률 네 배라 하는데, 언론에 제대로 나지도 않는다. 취업 문제면 눈을 낮추면 되지 않는가? 혹은, 요즘 사람들은 너무 나약해! 이렇게 함부로 말하는 자들이 있지만,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누군가 갈파했듯, 얼마나 절망적이었으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까?
 돌아올 땐, 바로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어서, 연지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공원에도 꽃들이 까르르 웃고 있었다. 꽃보다, 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꽃피는 계절에도 절망에 몰려 벼랑 끝에 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정녕, 그들에게 내밀 꽃은 없는 것일까? 나는, 경제적 고통이 자살의 주원인이라는 언론의 지적에 정치인들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지적은 정책적 대응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뜻이기에.
 하지만 정치권은 선거 때만 복지와 분배를 외쳐댈 뿐 선거가 끝나면 재원을 이유로 말을 바꾼다. 이에 여론이 비등하면, 직접세와 분배문제에는 입술 달싹일 용기도 없는 자들이, 국민건강은 언제부터 그렇게 걱정했는지, 국민건강증진을 명분으로 담배 값과 소주 값을 대폭 올려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따위의 얄팍한 꼼수를 안(案)이랍시고 내민다. 이럴 때 나는 분노를 느낀다. 이는 간접세를 올려 물가를 올리겠다는, 서민들 주머니를 털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
 물론, 벼랑 끝에 서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절망 상태라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기에. 사람은 자아인지능력이 생기면, 한 번쯤은 꽃처럼, 자신의 삶을 꽃피우고 싶어진다. 이것이 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이유이고, 꽃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심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삶이 꽃필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일정 부류의 소수는 벼랑 끝에 선다. 그러나 단언컨데, 그들은 진실로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진실로 꽃을 사랑하는 자는 한겨울을 견디는 꽃의 인고, 꽃의 투쟁을 아는 사람이다. 꽃은 아무리 엄혹한 추위와 폭설에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설령 그네들과 투쟁하다 죽을지라도. 그리고 꽃은 서두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꽃은 제 역할과 능력에 따라 봄에 피기도 하고 여름에 피기도 하고 가을에 피기도 할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겨울 눈 속에서 피기도 한다. 우리가 꽃에게 제대로 배운다면, 봄이나 여름에 자신을 꽃피우지 못한다 하여 성급히 가을 겨울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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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2013-04-02 18:00:31
봄,
기다려지기도하고,,,,
때론 지병으로 봄의 반가움보다 고통때문에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기도하지만
어쨋든 또하나의 새로움이라는것은 누구나 가슴설레는 일이지요

이현준 2013-03-22 20:23:18
글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 오른것이 옛 유행가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흥겨운 노래를 부른다....생각나서 먼저 흥얼그렸다. 봄은 잠시라도 꿈꾸는 청춘으로 돌아가게 한다. 필자가 마치 내 마음을 읽은듯 하다. 상념들이 교차하는 글 내용 또한 마치 지금 내가 앓고 있는 아픔들을 말해 주는듯 하여 고마움도 든다. 이렇듯 꿈의 봄속에 현실의 아픈것까지...봄을 그냥 지나치지 말자는 당부같기도 하다.

효원 2013-03-22 14:48:11
봄의 전경속에 사회, 경제, 정치가 다 어우러져 있습니다
제때 피지 못했더라도 희망을 가진다면 꼭 피워내리라 생각되어집니다
시인님의 글엔 삶의 지혜가 담겨있어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대선 2013-03-22 08:03:54
사랑은 인내라는 말을 떠올려봤습니다.
달콤함이나 화려함보다 인내라는 말이 사랑과 더 어울리는 것은
꽃처럼 가을과 겨울을 이겨내기 때문이겠지요.
자살에 대한 기사를 보며 그 이야기들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몸이 쾌유되시길요.
그래야 인내하는 삶 속에서 피어난 꽃들을 보면서
시인님과 겨울을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요.
꽃처럼 붉은 글에 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