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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적은 북한인가 골프인가
우리의 적은 북한인가 골프인가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3.03.13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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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 한 열편집국장 직대
 정권이 바뀌는 시점이나 국가안보 위협 상황이 되면 항상 부적절한 골프가 골때린다. 특히 고위직 공무원이나 군 장성들의 골프 습관은 큰 낭패를 당한다. 이번 박근혜 정부서도 예외 없이 많은 별들이 골프를 친 후 좌불안석이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일부 장성들의 주말 골프에 대해 잘못된 처신이라고 질책하고 현역 군인의 주말 골프장 이용 조사에 들어갔다. 군 일각에서는 주말 군 전용 체력단련장(골프장)인 태릉골프장에서 골프채를 잡은 장군만 10여 명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특히 서울과 경기도에 있는 군 체력단련장에서 주말에 골프를 친 현역은 500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국가 위기 속에서도 골프를 치는 걸 보면 골프채 잡기가 무기를 잡는 것보다 익숙한 군 현역이 많다는 방증이다. 여하튼 골프 친 군 어르신들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경남에서도 홍준표 지사가 지난해 12월 취임한 후 비리를 없애기 위해 “업자와 골프를 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후 공직사회에서 골프채를 잡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떤 고위직 공무원이 주말 봄빛 아래서 한가로이 골프공을 따라 거닐겠는가. 도지사가 바뀌는 시점에서도 골프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웠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관급공사를 받으려는 업자들이 고위 공직자들과 골프장에서 샷을 날리면서 여전히 노림수를 바라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주머니에 찔러주는 ‘정성’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도청의 한 고위 공직자는 차 트렁크에 넣고 다니던 골프 가방을 집 창고에 넣어버렸다는 눈물겨운 투쟁기를 쓰기도 했다.

 골프가 대중화되긴 해도 아직은 골프가 ‘그들’만이 누리는 한가한 운동이다. 오랜만에 친구 사이에 전화로 “언제 만나 골프나 치자”고 하면 한 친구는 다른 친구를 배려하지 못한 경우가 된다. 40, 50대 가운데 골프장 근처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그나마 생활에 여유가 있거나 직책이 높은 사람이 누리는 스포츠가 골프다. 아직은 서민이 골프채를 휘두르기는 만만찮다. 군 장성들이 키 리졸브 연습을 앞두고 골프를 즐긴 건 비난받아 마땅하다. 혹 북한 위협이 극에 달해 스트레스를 날릴 요량으로 잔디밭을 밟았다면 대신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갔다면 비난을 받았을까. 우리 사회에서 출세한 사람들은 존재감을 드러내길 좋아한다. 그 중 하나가 멋진 드라이버다. 군 장성이 국가의 위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잠시 뽐내기를 절제하지 못한 것은 지휘자로서 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PGA 골프에서 한국 여자선수들이 거둔 성적은 획기적이다. 숱한 우승은 국격을 올리는 밑거름이 됐다. 젊은 그대들은 지금 제2의 최경주나 신지애가 되기 위해 하루에 수천 번의 드라이버나 아이언을 날린다. 그들에게 골프는 미래의 꿈을 그리는 도구다. 이런 골프가 지탄의 대상이 되는 건 참 묘하다. 국격을 든든히 받치는 골프가 국가 안보를 나 몰라라 하는 몹쓸 상징물이 돼 버렸다. 경남에서는 고위 공직자가 주말 골프를 쳤다간 어떤 업자를 만났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당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제는 골프에 대해유연한 생각을 할 때다.

 우리 사회의 경직성은 우리 몸에서 도사리는 동맥 경화와 같다. 고혈압이 오래 지속되면 동맥 경화를 유발하고 뇌, 심장, 신장 등에 중대한 질환을 만든다. 툭하면 불거지는 ‘골프 사태’는 우리 사회가 부드럽지 못하다는 증거다. 군 장성들이 여러 변명을 들어 골프 친 것을 정당화해도 국민 대부분은 야유를 보낼 것이다. 골프 친 시점이 하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경남 고위직들이 골프채를 아예 집에 모셔 놓은 것도 뭔가 찜찜하다. 지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는데 당연히 몸을 사려야 하지만 그렇다고 몸에 붙인 주말 재미를 포기하면 업무는 제대로 볼 수 있을 지도 염려스럽다. 골프를 치라, 마라는 명령이 윗선에서 나오는 건 우리 사회의 슬픔이다. 골프를 언제나 쳐도 별일 없는 사회가 되면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성숙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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