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0:05 (금)
‘행쇼’ 정부는 가능한가
‘행쇼’ 정부는 가능한가
  • 안상근
  • 승인 2013.03.05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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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상 근 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요즘 우리나라 최대 화두는 행복이라는 단어 두 글자다. ‘행쇼’(행복하십쇼 줄임말)라는 유행어까지 생겼다. 심지어 모 방송국에서는 ‘행쇼’라는 오락프로까지 만들었다. 나라가 온통 행복 타령이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 행복 시대를 선언했다. 대통령이 국민의 행복 추구에 관심을 갖고 국정 과제로 삼았다는 것은 매우 의미로운 일이다. 취임사에서도 ‘행복’이란 단어를 20번이나 언급할 정도로 국민 행복에 대한 강한 실천의지를 보였다. 양극화, 불공정, 불평등에 시달려 온 서민들로서는 말만 들어도 위로가 된다.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 속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기쁨과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는 객관적ㆍ주관적 요소가 모두 충족돼야 한다. 객관적 요소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크다. “국민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던 이유도 먹고 사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 한 마디로 정치적 재미를 제법 본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경제적 형편이 좀 나아진다는 것이 행복의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오히려 주관적 요인이 더 클 수 있다. 주관적 요인은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잣대가 다르기 때문에 측정하기가 까다롭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말은 달콤하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행복지수를 나타내는 GNH(Gross National Happiness, 국가총행복량)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나라도 있다. 처음 사용한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라 히말라야 산 속의 작은 나라 부탄이다. 1974년 부탄의 국왕은 GDP(국내총생산)가 아닌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기준으로 나라를 통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부탄은 건강, 시간활용방법, 생활수준, 공동체, 심리적 행복, 문화, 교육, 환경, 올바른 정치 등 9개 지표를 토대로 GNH를 산출해 국가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에서도 행복지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 캐나다, 영국 등이 가장 적극적이다. UN에서도 작년 4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행복도는 156개 조사대상 중 56위를 차지했다. 상위권에는 속하는 유럽 강소국인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보다는 크게 못 미치는 결과다. 우리에 비해 소득이 낮은 말레이시아, 태국도 행복수준은 우리 보다 높았다. 역시 행복은 소득순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행복에 대한 고민은 철학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사람이 공리주의자인 제레미 벤담이다. 공리주의란 어떤 경우라도 그 결과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최대 행복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이론이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처럼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벤담은 행복 계산법까지 만들었지만 그의 일생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벤담과 관련된 재미있는 인생 스토리가 있다. 그가 33살일 때 카로린이라는 여자를 처음 알게 됐다. 첫눈에 반한 그는 매일 밤 어떻게 하면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까 고민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답을 구했지만 벤담의 나이는 벌써 68세나 됐다. 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35년이 걸린 것이다. 청혼은 당연히 거절됐고 결국 벤담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박근혜 정부는 아직 행복 시대를 열어갈 구체적인 수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조직개편안을 놓고 여야 간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마당에 행복타령을 하기에는 시기상조인지 모른다. 그러나 새 정부의 핵심과제인 만큼 조속히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행복은 벤담처럼 35년을 고민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빨리 국정공백을 메우고 국민과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민에게 ‘행복하십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행쇼정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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