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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 창조` 일터 일궈 직원 스스로 행복 느끼도록 하죠"
"`보람 창조` 일터 일궈 직원 스스로 행복 느끼도록 하죠"
  • 원종하
  • 승인 2013.02.12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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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하 교수가 만난 경제인의 인생 스토리⑮ ASPIC(아스픽) 이가상 대표이사
▲  아스픽 이가상 대표는 "자신의 남은 여생을 회사에 쏟아붓겠다"고 말한다.

 대기업 경험 살려 1992년 창업… 지난해 400억 매출
"73세에도 변화 빨라"… 2011년 `올해 금형인` 선정 돼

 김해시 진영읍에 위치하고 있는 아스픽은 금형과 관련해 지역사회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기업이다. 이를 반영하는 아스픽 이가상(73) 대표이사는 지난 2011년에 `올해의 금형인`을 수상했다. 올해로 73살을 맞은 그는 아직도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회사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평생 금형과 관련된 삶은 살아온 그는 우리나라 금형의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 대기업의 금형 최고관리자에서 만족하지 않으며 창업의 길을 선택해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 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보자.

 -창업을 하게 된 계기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한양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기업을 찾다보니 그 당시 부산에 있는 럭키에 취업을 하게 됐다. 편안한 생활을 해오다가 문득 퇴임 후의 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고 창업을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1992년 7명으로 처음 창업을 했다. 뒤돌아 보면 그 전에 금형과 관련된 부서에서 오랜 기간을 일을 했었고 창업멤버인 7명도 검증되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라 별 어려움은 없었다. 또한 처음 입사 당시 금형과 관련된 사업은 우리나라에서 그 회사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나라 금형 1세대로 현장에서 근무를 했고 결국 금형부서의 최고 책임자의 직책을 맡게 됐다. 이때 경영자로서 필요한 자질들을 익힐 수 있었다. 이후 그 회사에서 퇴임을 했고 금형에 대한 지식과 경영노하우를 접목시켜 지금의 아스픽을 창립하게 됐다. 나이가 많다보니 오랜 세월 경영한 것으로 오해하곤 하는데 실제 우리 회사를 경영한 것은 20년이 조금 넘는다."
 -20년 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뀐 매우 긴 세월이다. 그 동안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궁금하다.
 "부산에서 시작해 그 당시 땅값도 싸고 또 쉽게 땅을 구할 수 있는 김해로 이사를 했다. 처음 시작은 정말 소규모로 했다. 당시 내외동은 완전한 시골의 모습이었는데 그 곳에서 60평짜리 조그마한 건물에서 시작했다. 그러고 1년 후 지금 자리 잡고 있는 진영읍으로 이전했다. 이때 또한 그렇게 큰 규모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매년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다. 일 년이 지나 번 돈으로 부근의 공장 부지를 사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부지를 확장해 갔으며 이후 사출사업도 진행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됐다. 매년 성장하면 땅을 사 건물을 짓다보니 우리 회사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각 건물이 다 제각기처럼 보이지만 건물 하나하나마다 우리 회사의 과거와 성장이 담겨 있는 것이다."
 -다른 창업자들보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상황에서 창업을 했다. 회사를 경영할 때 불편한 요소는 없었나?
 "대기업에서 금형부분 최고 책임자로 일하다보니 눈높이가 매우 높았다. 쉽게 말하면 관공서 출입도 그렇고 은행업무나 다른 기업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갑의 위치에서 상대하고 하다가 갑자기 위치가 바뀌어 을의 입장이 돼 부탁하고 설득하고 하다 보니 그것이 참 어려웠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특히 창업자는 과거 어떤 자리에 있었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가를 살피고 관찰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에서의 나의 경험이 창업 초에는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체질을 개선한다는 것이 참 어렵고 또 생각처럼 하루아침에 되지 않은 것인데 어떻게 극복했나?
 "나이도 나이지만 기업의 규모가 작다고 잘 알지 못하면서 높은 자리에 있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우기고 할 때 참 힘들었다. 또 스스로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 때는 속이 들끓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에겐 `적응`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적응이 없다면 사람은 어려움을 이겨내기가 참 힘들 것이지만 그래도 스스로 성찰하면서 하루아침에 되지 않을 것이니 멀리보고 인내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바뀔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회사가 한 번에 나의 눈높이에 올라올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변화해야 했다. 그렇게 눈높이를 회사 수준과 주변의 인식에 맞췄고 이후 회사가 크게 성장했다. 적응이라는 무기는 제가 현재 70을 넘긴 나이에도 현역으로 회사를 경영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회사의 규모는? 또 회사 현관입구에 `보람 창조`라고 돼있는데 의미는? 
 "1992년 7명이서 시작해 지금은 16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매출은 2012년 기준으로 400억 정도에 이른다. 내수도 있지만 대부분 수출에 의존하며 전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다. 김해지역에서 중견기업이라 할까? 앞으로 우리 김해가 성장하려면 중견기업을 육성하는 정책들이 많아 나와야 할 텐데….
 기업에서 근무도 해보고 창업도 해보고 그런 세월 속에서 느낀 것이 사람은 무엇을 하든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이 있어야 동기부여가 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태어나 보람을 스스로 느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해야 하며 부지런해야 한다. 모든 직원이 스스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건강하고 부지런하길 바란다."
 -그럼 스스로 보람을 창조했던 경험을 듣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에 금형사업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 대기업에 취직해 금형분야에서 일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금형사업이 성장하고 회사가 성장하면 나 역시 성장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총 책임자를 지내고 창업을 했으며 지금까지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과찬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금형 역사에 산증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결과 2011년 올해의 금형인으로 선정됐다.
 당시 위험요소가 있는 금형보단 안정된 길이 있었을 텐데 왜 금형을 선택했나?고 묻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금형은 회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에서도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분명 위험한 길이었다. 그리고 더 안정적인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친구의 권유로 금형 쪽 일을 하게 됐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위험을 무릎쓰는 창업가 정신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본인 스스로 노력해야 보람을 창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보람을 창조하기 위해선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이 보람을 창조할 만큼 노력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언론에선 인력난, 취업난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기업에선 오히려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젊은 세대들의 눈이 너무 높은 곳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해 보람을 느끼는 인생을 살아가길 권하고 싶다. 작아 보이지만 그곳엔 늘 보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중소기업 대통령을 표방한 정부가 곧 출범한다. 김해시나 대학에게 바라는 점이 있는가?
 "새 정부가 중소기업과 관련된 다양한 공약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한 공약들이 모든 회사가 페어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도구로 활용돼야 한다.
 김해시에선 인재를 중소기업들에게 보낼 줄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에서는 이론교육보단 실무교육을 시켜 실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김해시에서 최고 대학은 인제대이다. 지역의 최고 대학은 지역사회에 맞춰 운영돼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봤을 때 김해시에 약 150개 정도의 금형과 관련된 회사가 존재한다. 인제대에선 금형과와 같이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학과를 창설하길 바란다. 김해시와 인제대, 관련 산업계가 협력해 새로운 산학협력을 해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장점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장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늘 긍정적으로 산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다. 물론 싫은 소리를 듣고 힘든 일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지만. 하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를 빨리 극복하며 잊어버린다. 이것이 지금의 나이에도 일을 할 수 노하우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계획이 궁금하다.
 "사실 예전만큼 경영에 많은 부분을 담당하지 않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후계 승계 과정을 밟고 있다. 회사가 성공적으로 인계가 되고 난 뒤에도 우리 회사의 초기 이름인 아성(牙城)처럼 남들이 넘볼 수 없는 회사로 만들기 위해 남은 여생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

 ▲원종하 교수는 누구
 경제전문가이며 인제대학교 국제경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역의 인재와 대학 그리고 지역경제를 연결하는 메커니즘을 만들기 위해 지난 97년부터 산학관 협동에 관심을 갖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기업체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2007년 김해기업연구소를 창립, 현재는 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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