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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보는 설레는 설… 서러운 설…
20대가 보는 설레는 설… 서러운 설…
  • 한민지 기자
  • 승인 2013.02.07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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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품 안에서 허전함 밀려와요
 입춘(立春)이 지났다. 여전히 매서운 동장군은 마지막 기승을 부린다. 유난히 추웠던 올 겨울. 그래도 봄은 온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왔으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말이다.

 이런 기대와 함께 우리는 여지없이 민족의 대명절 `설날`을 맞는다.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설날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경사를 기대하고, 크게 좋은 일을 일어날 것을 꿈꾼다. 가족과 친지를 비롯한 혈족과 주변의 지인들을 찾아보며 덕담을 주고 받는다.

 풍성하게 준비된 음식도 나눠 먹는다. 한 살 더 먹은 아이들의 재롱도 새삼 감칠맛 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같은 설 풍경은 흑백TV 화면처럼 희미한 추억으로 퇴색되고 있으니 서글프다. 현대인들에게 설날이 바쁘고 귀찮은 애물단지 쯤으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설빔을 곱게 차려입고 세화(歲畵)를 주고받던 풍속. 액막이 그림을 붙이는 문배(門排), 곡식 주관하는 별에 제사하는 영성제, 사람과 곡식 해치는 신에게 지내는 포제…. 십대는 고사하고 2~30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전래동화다.

 물론 `설날=고향`의 등식이 아직은 성립된다. 하지만 숨가쁜 일상 속에서 어렵게 귀성길에 오르고, 쫓기듯 후딱 차례를 지내면 서둘러 귀경길에 오르니 하는 말이다.

 세월의 변화에 맞춰 부모들이 자식들을 찾아 올리오는 역귀성도 설 신풍속도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근거리 친척들만 인사를 나누거나 심지어 아예 모이지 않는 집들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하니 말하지 않아도 알만하다.

 우리네의 설은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지만 따스함과 정겨움이 묻어났다. 과거형이다.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진 그 모습에는 스마트함이 터줏대감 흉내에 한창인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바뀌는 게 어디 풍속 뿐이겠는가.

 집안 어른들과 한 자리에 모여 먹는 떡국 한 그릇을 위해 방앗간 앞부터 장터 골목을 따라 줄을 서던 어머니들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기계에서 한 두 가락씩 뽑아져 나오던 뜨끈한 가래떡은 마트 한 구석에 봉지에 담긴 채 몇 천원에 팔린다.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에서 몇 시간씩 기다려 몸을 실으면 하루를 꼬박 새워도 부모님 생각에 웃음부터 났지만, 그 또한 빛 바랜 사진에만 존재하게 됐다.

 뻥뻥 뚫린 고속도로와 KTX 열차. 불과 몇시간이면 고향땅에 다다를 수 있다.

 경기불황과 핵가족화를 앞세우고 풍성하던 설 음식도 간소해졌다. 온 가족이 두루 앉아 전을 붙이며 담소를 나누던 것도 설 풍경이라 쓰고 스트레스라 읽는다.

 미리 조리된 간편식 제수음식을 판매하는 업체들만이 호황을 누린다.

 짧은 기간을 핑계로 고향에 가지 않는 구실을 만든 뒤 국내ㆍ외 여행을 통해 해방감을 찾으려는 젊은이들과 휴대전화 메시지로 인사를 주고 받으며 세뱃돈을 현금 대신 사이버머니로 주는 사례도 늘어만 간다.

 수많은 현대의 가정들은 피곤하게 설 명절을 마무리한다. 온전하지 못한 명절의 모습으로. 언제나 즐겁고 풍요로울 줄만 알았던 우리의 설이 이렇게 각박하게 변한 원인은 무엇일까?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치솟는 물가, 밀리는 임금 체불, 늘어만 가는 세금,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 그리고 고령화시대에 발 맞추지 못하는 노인정책까지….

 몸은 편해지고 어디든 쉽게 떠날 수 있게 됐지만 가족간의 정겨움은 더욱 그리워지는 설 연휴다.

 부디 이번 설 만큼은 동장군이 질투할 만큼, 그 놈의 기승을 순식간에 녹일 만큼 훈훈하게 보내길 기원한다. 한민지 기자 hmj@kn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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