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은 예술… 한번 온 손님 다시 찾게 만들죠"
"미용은 예술… 한번 온 손님 다시 찾게 만들죠"
  • 원종하
  • 승인 2013.02.0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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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하교수가 만난 경제인의 인생 스토리⑭ 헤어클럽 블루 이경미 원장
▲ 이경미 원장

 18년째 `가위질`… 상권보다 서비스 더 중요
"가족 같은 직원 위해 2ㆍ3호점 계속 내고 싶어"

 소상공인들의 경영 여건은 나날이 힘들어지고 특히 미용업은 곧 가격표시판을 달아 외부에서 알 수 있도록 하는 등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다. `헤어클럽 블루`는 김해시 서상동 시대를 접고 제2의 창업이라는 각오로 최근 내외동으로 이전 해 아직 제대로 된 간판을 달 시간도 없이 영업을 시작 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이른 아침시간 내부에 들어서자 손님을 맞이한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내 곧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경미(48) 원장의 철학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미용이라는 직업이 좋아 20대 초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기술을 익혔지만 일에 지쳐 자신의 꿈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던 그녀는 결혼을 하며 가위를 손에 놓고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자 했지만 오히려 더욱 힘든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 년이 흐른 후 결국 천직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가위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미용실 창업이라는 또 다시 힘든 길을 선택했다. 인터뷰 내내 손님과의 소통을 강조한 인생스토리, 진심이 묻어나는 이 원장의 28년 미용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 헤어 블루 전경
 -어려운 창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19살 때 미용사였던 친언니의 영향으로 미용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 미용을 시작했던 곳은 부산의 서면이었다. 미용사라는 직업이 일한 만큼 인정받고 월급을 받는 직업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좋아하는 나의 성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용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서면에서 2년간 일을 하면서 미용에 관한 많은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이는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기술이 잘 익혀지지 않을 땐 울기도 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러 그곳의 미용사들이 나의 재능을 인정하면서 창업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좀 더 기술을 익히고 창업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차비가 없어 걸어 다닐 만큼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차근차근 기술을 배워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곳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창업한지 얼마나 됐나? 특별한 철학은?
 "김해 동상동 시장에서 처음 창업을 했다. 그 곳에서 약 6년간 운영한 뒤 서상동을 거쳐 얼마 전 현재 위치하고 있는 내외동으로 이전했다. 95년도에 처음 창업했으니 올해로 창립 18주년을 맞게 됐다. 특별한 철학 이라기보다는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지켜야 할 사람이름 기억하기, 이야기 들어주기, 어떤 이야기를 나눠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식을 쌓기 위해 신문과 책 읽기 등이다."
 -요즈음 소상공인들은 어렵다고 하는데 특별히 더 큰 장소를 옮겨 영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동상동 시장과 서상동에서 운영을 잘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의 상권이 무너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용은 유행에 민감한 직종이다. 요즘과 같이 유행이 빠르게 바뀌는 과정 속에선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손님보다 새로운 손님의 유입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동상동 시장과 서상동은 더 이상 새로운 손님의 유입이 없었다. 그래서 김해에서도 새로운 사람이 많이 유입되는 이곳 내외동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
 -두 집 건너 미용실을 쉽게 볼 수 있다. 분명 영업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데 나만의 경쟁력이 있는가?
 "지금껏 주위의 미용실 때문에 고민해본 적이 없다. 처음 창업한 서상동 시장에서도 그 당시 김해에서 제일 큰 미용실 바로 앞에 창업을 했을 정도이다. 미용실은 이러한 상권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한번 방문한 손님을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한번 미용실을 방문한 손님은 길어야 3달 안에 다시 미용실을 찾아온다. 만약 3달이 넘도록 다시 우리 미용실을 찾지 않는다면 그 손님은 더 이상 우리 미용실의 고객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미용실의 경쟁력은 한번 온 손님을 3개월 안에 다시 오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3개월 만에 손님을 다시 미용실에 올 수 있도록 만드는 특별한 노하우는 무엇인가?
 "서울에서 미용사 생활을 하며 기술을 익힐 때 선배 미용사에게 배운 것이 있다. `손님의 이름을 꼭 기억하라` 그리고 `책을 많이 읽어라`라는 것이다. 이는 손님과의 대화를 위한 것인데 미용사 역시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이러한 서비스적인 부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통이 되는 손님은 그렇지 않은 손님보다 우리 매장을 다시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기술에 자신이 있었다.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이라면 꼭 맞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5년 정도 지나니 손님의 머리를 만지면 필이 꽂힌다고나 할까 느낌이 온다. 미용도 예술의 한 분야 이다."
 -미용사로서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 본다면?
 "애착, 열정, 넘어질 때 넘어지더라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오뚝이 같은 삶이랄까? 이제는 여유도 생겼고 하지만 처음 몇 년간은 무척 힘들고 외롭고 쓸쓸함을 많이 느꼈다. 부산에서 미용기술을 익히고 서울에 가서도 빠른 시간 내에 자리를 잡으며 인정받았다. 또 나를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다 보니 주위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야했다. 한번은 원장에게 불려가 혼나며 많이 울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미용이라는 일에 대한 흥미를 잃었던 것이다. 몇 년 동안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사람 대하는 것을 좋아하고 미용하는 것을 즐겼을 뿐인데 그러한 것이 어느 순간에는 나를 힘들게 하고 벗어나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하기도 했다."
 -미용을 시작한지 28년, 창업을 한지는 18년이 흘렀다. 즐거웠던 추억을 듣고 싶다.
 "몰입이 때로는 힘들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울증 약을 먹을 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결혼을 하면서 2년 정도 공백기를 가지고 한 남편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생활을 꿈꿨지만 역시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게 되더라. 아이러니하게도 미용사라는 직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극복됐고 그곳에 기쁨이 있음을 알게 됐다. 나는 원래부터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즐겼다. 미용사라는 직업은 이러한 나의 성격과 잘 맞았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 최선을 다해 머리를 해주고  손님들이 진심으로 만족할 때 항상 즐거웠다."
 -일하는 직원이 많아 보인다. 다른 미용실에 비해 어떠한 수준인가?
 "이 근처 미용실을 기준으로 볼 때 꽤 큰 수준의 미용실이다. 직원의 수나 규모 모두 그렇다. 미용사라는 직업이 이직률이 상당히 높은데 우리 직원들은 그나마 덜한 것 같다. 손님 뿐 아니라 직원에게도 진심으로 대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딱히 봉급이 높은 것도 아니데 자신의 직장이라 여기며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항상 고맙다. 참 고된 직업이다. 많은 시간을 서서 일해야 하고 식사시간이 정해진 게 아니니 위장병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점심과 저녁은 가게에서 해서 함께 먹는다. 모두가 우리 가족처럼 생각하고 또 그렇게 대하다 보니 창업 초기부터 계속 근무하는 직원이 많다."
 -앞으로 가격표시판을 달아야 하는 등 점점 환경이 어려워지는데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저는 특별히 외부의 환경에 신경을 잘 쓰지 않은 편이다. 외부적인 것보다 내부적으로 우리 헤어 클럽에 몸담고 있는 직원들 모두 자신이 원하는 꿈을 펼치고 나아가 미용실을 창업해 성공하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돈을 많이 벌기위한 욕심보다는 우리 직원들을 위해 2호점, 3호점을 내보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감사하다. 지금까지 이러한 개인적인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본 적이 없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를 통해 또 한번 나를 돌아보고 마음수련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원종하 교수는 누구
 경제전문가이며 인제대학교 국제경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역의 인재와 대학 그리고 지역경제를 연결하는 메커니즘을 만들기 위해 지난 97년부터 산학관 협동에 관심을 갖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기업체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2007년 김해기업연구소를 창립, 현재는 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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