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0:10 (목)
讀書嘆(독서탄)
讀書嘆(독서탄)
  • 김루어
  • 승인 2013.01.03 19:4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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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루어의 아침을 여는 시선

 신년이 되면 사람들은 습관처럼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 신년이 되면, 새로운 각오로 야무진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한해 읽을, 한 달에 다섯 권 일 년으로 치면 60여권에 상당하는, 독서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나의 이런 독서 계획은 15년, 아니 16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연말이 되어 돌아보면 계획대로 책을 독파하는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해가 많아 스스로에게 면구스러울 때가 더 많기는 하다.
 하지만, 정초에 작성한 독서목록에 따라 책을 구입하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이다. 구입한 60여권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책을 수북이 서재에 쌓아 놓고 밥을 먹지 않아도 혼자 배부른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딸 하나가 묻는다. 엄마, 책이 지겹지도 않아요? 나를 새롭게 해주는데 왜 지겹겠니? 새롭게요? 그래, 책은 우리가 새로워지도록 꿈꾸게 해주지. 더 이상 반박은 않지만 딸의 표정은 공감의 표정은 아니다.
 때로는, 신년인사차 들른 친인이나 지인들에게 여지없이 타박을 맞는 경우도 있다. 가로 늦게 무슨 공부니? 혹은, 요즘 같은 시대에 종이책을 읽는 원시인도 있나? 또는 더 심하면, 책에 무슨 포한(抱恨)이라도 졌니? 라고. 이 정도 말까지 듣게 되면 타박을 넘어, 수십 년 세월이 지나도 아물지 않고 남아 지금도 때때로 쓰린, 젊은 시절 아픈 기억에 뿌려지는 소금이 된다.
 성장기를 돌이켜보면, 남들에게는 존경받았을지 모르지만 집안에서는 마초기질의 완고한 공직자였던 아버지의 눈에는 없어도 좋은 막내딸일 뿐인 나는 언제나 손위 형제들의 뒷전이었다. 교육도 그네들은 모두 중고부터 대도시로 보내 서울로 대학진학을 시켰지만 나는 딸이라는 이유로 고향에 붙잡혀 있었다. 책도 옷도 모두 그네들이 쓰던 것을 물려받았다.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독서도 제한을 받았다.
 하지만 꿈을 접을 수는 없어 여고 3년 때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들어, 마뜩지 못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대학진학을 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할 수는 없었다. 정년퇴직한 아버지가 시작한 사업이 파산, 손위형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노릇을 강요받아 공무원시험을 치고 사회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혼 후에는 생업과 아이들 때문에 체계적으로 독서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 책을 읽을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는 마흔이 훌쩍 넘어 있었다.
 이런 내 아픈 경험 때문에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젊은 세대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는 흘려듣거나 혹은 당돌하게 반발하는 아이들조차 있다. 독서요? 컴퓨터를 두드리면 다 나오는데 왜 골치 아프게 긴 시간을 들여 책을 읽어요? 그렇다, 그들은 휴대전화나 인터넷으로 책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대체한다. 전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지만 카카오톡을 하는 젊은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PC방에는 중고생이 넘쳐나지만 서점이나 도서관에는 중고생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미련하게도 다시 그들을 설득한다: 너희들이 신줏단지처럼 생각하고 있는 컴퓨터운영체제를 만든 빌게이츠도 자신의 성공은 독서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단다. 그리고 실제로 게이츠는 10살이 되기 전에 백과사전을 독파할 정도의 독서광이었단다. 그러나 아이들의 반박은 즉자적이고 명쾌하다: 천재니까 그럴 수 있었을테지요.

 범인인 우리로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반박처럼 들린다. 그러나 만유인력을 발견, 물리학의 새로운 문을 연 아이작 뉴턴의 술회를 들어보면 이런 반박은 어리석어 보인다.「나를 보고 천재라고 하지 마시오. 만일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멀리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나를 앞서간 위대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외다.」뉴턴이 말하는 거인이란 책을 말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나는 뉴턴의 말을 되풀이 하진 않는다, 그들이 귀를 막고 있기 때문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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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2013-03-23 13:20:25
60권의 책 목록을 작성 하는 것은 그만큼의 비결이 있을것 같기도 하고
독서지도을 잘 짜야 하겠지요
저도 책을 좀 읽어 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고 앞서 읽은 책의 연동을 받는 책을
뒤이어 보는 편입니다
e북이다 뭐다 해서 종이책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하지만
한 장씩 사각이며 넘기는 그 재미에 줄거리가 이어지고 몰랐던 부분은 뒤적여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잭을 많이 읽는 사회가 되어야 현실은 좀 아쉽습니다^^

넥타이 2013-01-03 23:35:14
북향의 방에 방문을 열면 연못과 나무 꽃이 보이고 남향의 창으로 빛이 내리고 좌우로 책을 쌓아놓고 가운데 좌탁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