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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해선 안 돼" 열정으로 미래 개척 ‘1천억 회사’ 성장 꿈꿔
“거짓말 해선 안 돼" 열정으로 미래 개척 ‘1천억 회사’ 성장 꿈꿔
  • 원종하
  • 승인 2012.12.2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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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하교수가 만난 경제인의 인생 스토리⑨ - (주)세호테크 강찬홍(58)대표이사

매출 165억… 수출 95% 차지“두려움 버리고 목표 높게 잡아야”

 김해시 한림면에 위치한 (주)세호테크 강찬홍 대표이사(58)는 지난 1986년 GS칼텍스(옛 호남정유)의 6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본인만의 삶을 찾기 위해 그동안 현장과 영업의 노하우를 가지고 우레탄이라는 원료로 회사를 창업했다. 이후 제1공장과 제2공장을 세워 회사를 양적으로 또는 질적으로 확대시켜 이제는 전 세계 40 여 개국 50여 개 업체와의 네트워크로 세계 곳곳에 원료를 수출하며 회사를 꾸준히 성장시켜왔다. 지역사회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음에도 만족하지 않고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새 공장을 전북 익산에 건립하고 있으며 새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지난 15년 동안 한결같은 원칙을 가지며 완벽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향후 1천억 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 오늘도 한 달에 반은 외국에서 바이어를 만나거나 박람회를 참가하고 있다 .이렇듯 모두의 미래를 향한 그의 도전과 계획은 지속되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국가 이미지 상승에 이바지 하겠다는 그의 신념과 새해 계획을 지금부터 들어보자.

 -창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내 성격이 월급쟁이와 맞지 않았다고 느꼈고 먼 미래를 생각 했을때 새로운 점프가 필요했다. 생각없이 살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늘 고민하고 사전에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라 때가 됐다고 판단될 때 창업을 하게 됐다. 그렇다고 무작정 창업에 뛰어 든 것은 아니다. 86년에 처음으로 창업하기 전에 이 분야에서는 꽤 큰 회사에서 6년간 경력을 쌓았다. 4년 동안은 현장에서 현장 노동자로 근무를 했으며 나머지 2년을 영업팀에서 근무를 하며 무역을 배웠다. 이렇게 나름의 경력을 쌓은 뒤 우레탄을 가지고 창업을 시작했다.”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말 그대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언제 가장 힘들었나?
 “회사를 창업하고 나름 성장해 월 3~4억 정도 매출을 올렸을 때가 98년 쯤인데 그때 IMF가 찾아와 큰 위기를 맞았다. 그때 비로소 ‘창업이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엔지니어 출신이다 보니 기술만 좋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경영을 전공으로 배우지 않고 엔지니어로 창업을 하다보니 IMF를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다. 이때 전문적인 경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됐다. 중진공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고 모자란 부분은 한 달에 4권 정도 책을 보며 스스로 독서를 통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늘 독서를 하는데 경영학과 관련된 책과 세계사 분야의 책 많이 보는 편이다. 이렇게 경영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노력하다보니 IMF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독서를 많이 한다고 했는데 사무실에도 많은 책들이 보인다. 앞서 말한 경영과 관련된 서적이외에도 역사와 관련된 서적이 많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독서가 취미생활이다. 경영서적이야 경영 공부를 한다는 의미에서 많이 읽는 편이지만 역사서적은 흥미를 가지며 읽는다. 이러한 역사공부는 해외출장시 많은 도움이 된다. 회사 매출의 95%가 수출 등  무역으로 이루어지다보니 해외출장이 잦은 편이다. 그래서 세계 곳곳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곳의 문화를 알고 역사를 알다보니 현지 바이어들과의 만남 때 대화의 폭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우리 김해에도 수출하는 중소기업도 많지만 반대로 해외 바이어들이 김해에 와서 제품설명회 등을 할 때 문화에 대해 공부를 해 함께 설명해 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바이어를 만나 서로 바로 본격적인 설명보다는 문화와 함께하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또 우리 김해문화의 우수성도 함께 알릴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회사 매출의 대부분이 무역으로 이뤄진다고 했는데 현재 무역규모가 얼마나 되나? 또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우리 회사는 매출의 95%가 수출을 하고 국내는 5% 정도다. 전량이 수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 지사도 중국, 인도, 베트남 등 3개 국가에 있으며 주요 수출국으로는 중국ㆍ인도ㆍ유럽 등 총 4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협력 업체로는 50개 정도 교류를 맺고 있다. 수출 매출은 2012년 올해 기준으로 165억 정도 예상이 되고 있다.
 힘들었던 에피소드는 2가지 정도 기억이 난다. 첫 번째는 아르헨티나를 갔을 때이다. 비행시간만 36시간 걸렸는데 다음날 현지 바이어를 만났지만 어떠한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또 다른 하나는 모로코다. 업무적인 부분에서도 실패에 가까운 출장이었지만 더 실망했던 것은 가기 전에 상상했던 모로코와 현지의 모로코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반면 인도 같은 나라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높은 성과를 얻었던 적이 있다.”
 -이렇게 많은 국가들과 수출을 하면서 기준이나 원칙은 무엇인가?
 “15년 정도 수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이미지’다. 우리 회사와 교류를 맺는 해외 업체들은 우리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판단을 우리나라의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우리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면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상승이 되고 우리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면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이다. 그래서 값싸면서도 높은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비록 소규모 회사이지만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또 정직한 것이다. 한번은 칠레에서 있었던 일이다. 제품의 재고기간이 1년인데 사용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유효기간이 지난 제품이 40톤 정도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55일 정도 시일이 걸려 회전이 어려웠고 경비도 경비지만 과감히 반품을 해준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 회사를 경영해 오면서 가장 즐거웠을 때는 언제였나?
 “모든 경영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경영자로서 가장 기쁠 때는 힘든 거래가 성사됐을 때이다. 도미니카 공화국과 거래를 성사한 적이 있는데 정말 예상치도 못한 거래였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조금 떨어진 코스타리카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찾아와 거래를 한 적이 있다.
 또 우크라이나가 떠오른다. 3년 전 우크라이나는 심각한 외환위기를 맞았다. 우크라이나의 협력업체가 우리의 제품을 필요로 하는데 그 쪽에서는 외화를 밖으로 보낼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돈을 우리가 지정한 은행으로 입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우리 입장에서는 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지만 그 회사를 믿고 제품을 보냈다. 6개월이 지난 후에야 외환문제가 해결돼 그 금액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그 회사와는 지금도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신뢰ㆍ약속ㆍ원칙 등 이러한 부분을 상당히 중요시 하는 것 같다. 며칠 후면 새해가 밝아온다 새해 소망은 무엇인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무역은 국가과 국가의 약속이라 생각한다. 첫 번째로 여기는 철학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이다. 이는 회사 경영방식과도 연결된다. 두 번째는 ‘열정’이다. 열정이 있어야 힘든 과정을 이겨낼수 있다. 이는 회사의 직원들에게 꾸준히 강조하는 것이다.
 2012년의 가장 큰 목표는 익산의 새 공장 건립이었다. 올해 6월부터 준비를 했는데 내년 1월 말 정도면 완공 단계에 들어갈 것으로 보여 매우 기쁘다. 새해 소망이 있다면 익산의 공장이 100%로 가동되는 것이다. 향후 2년 정도는 익산 공장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매출은 3배 정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회사 경영자로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요즘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사무실에서 일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본인도 4년간 현장에서 근무했다. 이러한 현장 경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자산이 돼 있을 것이다. 또한 요즘 청년들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두려움을 없애고 목표를 높게 잡기를 바란다.
 사장이라는 직업은 힘은 들지만 매우 매력적인 직업이다. 창업에 대한 도전을 꿈꿔보길 바란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점수로 매긴다면 몇 점을 주고 싶은가?
 “자신에게 점수를 주려니 쑥스럽다. 회사 경영에 올인을 하다보면 가정에 소홀할 수 있다. 자식이 둘이 있는데 두 명의 아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하면 ‘아버지’라 한다. 이렇게 보면 가정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90점을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어느정도 되면 스스로의 정년을 정할려고 하는데 저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다 할지라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계속해서 노력하려는 삶을 살고 싶다. 누군가의 눈에는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돈을 위해서가 아니다. 무엇인가 미쳐 목표하는 것을 이루어냈을 때 그 ‘성취감’에 매력을 느낀다. 그 성취감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다.”

 ▲원종하 교수는 누구
 경제전문가이며 인제대학교 국제경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역의 인재와 대학 그리고 지역경제를 연결하는 메커니즘을 만들기 위해 지난 97년부터 산학관 협동에 관심을 갖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기업체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2007년 김해기업연구소를 창립, 현재는 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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