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8:13 (목)
탈선 아닌 생존 위해 `조건만남`
탈선 아닌 생존 위해 `조건만남`
  • 한민지 기자
  • 승인 2012.12.05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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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우 성매매> 3. 집 나온 소녀들에게 무슨 일이
갈 곳 없는 아이들 `몸` 던져 돈 벌면서
"난 애초 창녀가 될 운명" 자책하기도
▲ 한 10대 가출소녀가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성매수자를 물색하고 있다. <경남매일 DB>
 청소년 성매매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수치로 환산돼 있지 않다. 일부 언론이 보도한 `가출 청소년, 20만 명에 달한다`는 내용을 보며 짐작만 할 뿐. 거리의 소녀들은 폭력의 피해자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폭력은 `거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폭력으로부터 구조되지 못한 소녀들은 여전히 거리를 떠돌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성폭행 사건에다 일상화 된 성매매까지… 이제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 화제 가출 소녀를 만나봤다. 집에서 나온 소녀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본지는 어쩔 수 없이 가출을 선택한 후 성매매에 발을 들인 이유나(16ㆍ여ㆍ가명) 양의 이야기를 토대로 과거를 재현했다.

 유나의 부모님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이혼했다. 어머니는 새학기를 맞아 책가방을 선물했고 그날 밤 집을 나갔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아버지와 삼촌, 치매에 걸린 할머니만 남았다.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때렸다. 어머니가 견디지 못한 폭행이 유나 몫이 돼버렸다. 학교를 가지 못하는 날도 허다했다. 살림에다 할머니 간병도 버거웠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삼촌이 유나 방을 기웃거렸다. 동화책을 읽어준다거나 놀이를 하자는 식으로 접근해 방문을 걸어 잠궜다. 유나는 인터뷰내내 삼촌을 `악마`라고 불렀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생리가 끊겼다. 배가 점차 불러왔다. 임신이란 사실조차 몰랐다. 가슴에 몽우리가 지고 몸이 변하기 시작하자 삼촌이 먼저 알아챘다. 삼촌은 유나를 외곽지역에 위치한 산부인과로 끌고 갔다.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유나 머리 맡에는 1만 원짜리 세 장만 올려져 있었다. 그길로 유나는 집을 나왔다. 여벌의 옷따위도 없었다.

 처음 며칠은 공원 화장실과 지하 주차장 등에서 잠을 해결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듣게 됐다.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삼촌으로부터 겪어야 하는 수모와 고통보다는 견딜만 했다. 한 두시간만 참으면 10만 원을 벌 수 있었으니.

 성매매를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날 무렵 PC방에서 찜질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화장품과 갖가지 늘어나는 옷들을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대실이 아닌 숙박을 결제하는 아저씨를 만나는 것으로 하루 운을 점치기도 했다.

 유나는 노래방이나 룸살롱 같은 곳은 가지 않는다. 돈을 떼인다거나 감당하기 벅찬 빚을 지고 팔려다니는 여성들의 사연을 언젠가 TV에서 봤던 기억 때문이다. 젊고 어리다는 것. 그것이 유나에게는 무기이자 전략이다. 채팅 사이트에 접속해 나이만 알려줘도 흥정보단 값을 더 쳐주는 남자가 넘친다. 교복 입기를 원하는 사람들 탓에 문턱도 못 가본 중학교 교복도 한 벌 구입했다.

 가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지 않거나 변태적인 가학 행위를 시도하는 사람들을 만날때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유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 `쉼터`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성매매라는 지옥의 자유에 물든 아이들에겐 `감옥`으로 불렸다. 오늘도 유나는 PC방으로 향한다. 조금 더 좋은 조건의 상대를 물색하기 위해서다.

 수년 째 발라온 붉은 립스틱이 여전히 어색할만큼 앳된 유나는 성매매 상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의 전화를 받으며 인터뷰를 끝냈다. 유나는 마지막으로 "어쩌면 저는 태어날 때 부터 창녀가 돼야 할 운명이었을지도 몰라요"라는 말을 남겼다.

 얼마전 `다시함께상담센터`는 성매매 피해여성 10명 중 4명이 청소년기(13~19세)에 성매매를 처음 시작했으며 절반 가량이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했다.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한 청소년이 생계를 위해 성매매를 시작하는 악순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나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청소년, 그리고 노인의 성매매까지…. 성매매방지특별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은밀하게 성을 사고파는 거래.

 단속에도 아랑곳 없이 증가하는 청소년과 노인의 성매매 소식은 더이상 가십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과연 누가, 무엇이 이들을 그 곳으로 내몰고 있는 것인가.

<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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