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7:09 (금)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
  • 곽숙철
  • 승인 2012.11.12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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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 숙 철 CnE 혁신연구소장
  수천 년 전에 한 네안데르탈인이 자기가 사는 동굴 뒤에 있는 언덕을 오르면서 둥글게 생긴 바위 하나를 우연히 아래로 밀어뜨렸다. 바위는 경사면을 따라 아래로 떼굴떼굴 굴러 내려갔고, 이 광경을 본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 다음 날 그는 바위를 다듬어 인류 최초의 바퀴를 만들었고, 이웃 사람들은 그가 전날 본 광경에서 빌린 아이디어로 새롭게 창조한 발명품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다른 부지런한 네안데르탈인이 이 발명품을 모방해 바위가 아닌 나무로 바퀴를 만들었다. 나무로 만든 것은 가벼워서 굴리기가 한층 쉬웠다. 또 다른 네안데르탈인은 여기에 바구니를 달아 인류 최초의 수레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이 수레로 죽은 호랑이의 시체를 손쉽게 옮겼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사람들은 이 수레를 말이 끌도록 했고, 이렇게 해서 인류 최초의 전차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두 개뿐이던 마차 바퀴가 두 개 더 더해져 더욱 안정적인 짐마차가 나타났다. 나중에는 말 대신 증기기관이 결합돼 자동차가 탄생했다.

 최근 세계 각지에서 삼성전자와 애플이 스마트폰과 관련해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다. 미국 법원의 소송에서는 배심원들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애플의 제품을 베꼈다고 판결을 내렸다. 반면 영국에서는 삼성전자 제품이 아이패드를 베끼지 않았다는 판결과 함께 애플에게 이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하도록 명령한 데 이어, 애플의 사과문이 불충실하다며 재고지하라고 지시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는 근본적으로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며, 창조와 모방은 그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다. 그는 인간 문명이란 자연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며 이를 `미메시스(Mimesis)`라고 명명했다. 피카소도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며 창조적 모방을 강조했다. 10대 시절 피카소는 미술 기법을 터득하기 위해 대가의 그림들을 따라 그렸다.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모방했던 그림들을 자기 식으로 재창조했다. 입체파의 서막을 연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은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의 구도를 그대로 차용한 작품이다.

 삼성전자와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는 애플의 전임 CEO 스티브 잡스 역시 이 점을 인정했다. 그는 1996년 6월 PBS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괴짜들의 승리>에서 피카소의 말을 인용한 다음 "애플은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에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당위성을 부여할 만큼 남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기술을 많이 모방했다.

 스티브 잡스는 뭔가를 훔치되 자신의 창조성을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잡스가 주목받지 못한 신기술을 창조적으로 이용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2011년 발표한 아이폰 4S에 들어 있는 `시리(Siri)`라는 음성인식 기능도 그 가운데 하나다. 시리는 애플의 다른 혁신적인 제품과 마찬가지로 모방을 통해 새로운 기술로 거듭난 것이다.

 어떤 것이든 아이디어란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재료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진정으로 누구 한 사람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결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무언가가 있어야 그것을 재료로 삼아 다른 어떤 것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뇌 물리학의 법칙이다. 그래서 유율법(流率法)이라는 미적분 계산법을 만들면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비판을 받은 천재 물리학자 뉴턴(Isaac Newton)이 "더 멀리 바라보기 위해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야 했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는 선도자나 개척자가 되라"는 말은 매우 멋있게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매혹적인 말은 성공확률이 매우 낮고 비용이 많이 드는 아주 위험한 전략이다. 기존의 것을 무시하면서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하지만 소수만 성공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모방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모방하라. 모방은 창조를 위한 실행의 첫 단추다. 모방이 쌓이면 어느 순간 창조라는 질적 변화를 맞는다. 모방은 학습이고 경험이며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모방을 거치지 않은 새것은 없다. 모방은 창조의 필수 과정이자 가장 탁월한 창조 전략이다. 물론 단순히 훔치라는 말이 아니다. 모방하되 창조적으로 모방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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