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23:23 (화)
성과주의, 능사가 아니다
성과주의, 능사가 아니다
  • 곽숙철
  • 승인 2012.11.05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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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 숙 철 CnE 혁신연구소장
 경쟁력 있던 어느 기업이 경기 불황으로 실적이 떨어지면서 인원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궁리 끝에 회사는 한 임원의 책임 하에 각 부서의 정리해고 대상자를 모아 새로운 제2영업부를 만들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지명해고와 같은 상황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제2영업부를 한꺼번에 떼어내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각 부서에서 정리해고 대상자 취급을 받으며 의기소침해 있던 제2영업부 직원들은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이자 서로 의지하며 점차 의욕을 되찾기 시작했고, 점점 실적이 향상되더니 마침내 기존의 영업부 실적을 앞지르게 됐다.

 회사로서는 참으로 난처한 일이었다. 성과주의에 입각해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했는데, 그들이 탁월한 성과를 내었으니 말이다.

 이 시대 한국사회를 대변하는 키워드의 하나는 `성과주의`다.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 각종 단체 등 온 사회가 성과주의를 외치고 있다. 성과주의란 말 그대로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조직구성원들의 성과를 측정하고, 그 성과에 연동한 임금체계를 통해 구성원들을 동기부여하는 일련의 제도를 말한다. 쉽게 말해 성과가 높은 사람은 많이 보상하고 성과가 낮은 사람은 적게 보상하거나 극단적으로 해고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과 같은 경쟁시대에 있어 지극히 당연한 논리인 것 같아 보인다. 성과주의를 도입하면 저마다 남들보다 성과를 많이 창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이는 조직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뿐 아니라 연공서열에 따라 돈만 많이 받아가면서 성과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정리할 명분도 챙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성과주의가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특효약일까? 결론적으로 말해 그렇지 않다. 성과주의가 결코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 성과주의 인사 제도의 잘못된 도입으로 실패한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의 경우 무분별한 성과주의의 도입이 기업을 망쳤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아시아 최대의 ICT 업체로 불리는 `후지쯔`가 그 대표적인 예다.

 후지쯔는 1990년대 초 일본식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를 최초로 폐지하고 성과주의를 도입해 일본 내 큰 충격을 가져다 준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성과주의로 미국의 IBM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들뜨게 만들던 후지쯔가 어찌해 비판의 도마에 오르게 됐을까?

 후지쯔의 인사부서 출신으로 《후지쯔 성과주의 리포트》라는 책을 쓴 `조 시게유키(城繁幸)`는 그 원인을 섣불리 제도를 만든 다음 그것을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파해 억지로 따르게 하려는 기계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그는 성과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식이 아닌 자국의 전통과 문화에 맞는 성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장기적이고 부문에 맞는 목표 설정, `공개`와 `공정`을 기본으로 한 평가, 뿌리 깊은 연공서열 의식의 극복,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성과주의가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과주의에 대한 반성은 이 제도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시장원리에 기초한 성과주의를 포기하고 장기 고용과 연공 중시, 보상격차의 축소, 집단 단위 평가와 자율관리 등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community)형 인사 시스템으로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엇이든 지나쳐서 좋은 것은 없는 법이다.

 모든 제도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다. 오직 긍정적인 면만 있는 제도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설령 성과주의가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성과주의의 부정적 요소가 조직력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우리 기업들이 성과주의를 과감히 버릴 것을 주문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와 맞지 않는 미국식 정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개인주의가 일종의 종교처럼 숭상되는 나라인 반면 우리나라는 정(情)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이다. 한마디로 문화적인 코드가 다른 것이다.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는 제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하더라도 약이 되기는 커녕 독이 될 수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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