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날 필요로 할 때 손 내밀어 함께 가는 것 그 마음이 제 기부 철학"
"누군가 날 필요로 할 때 손 내밀어 함께 가는 것 그 마음이 제 기부 철학"
  • 원종하
  • 승인 2012.10.2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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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하 교수가 만난 경제인의 인생스토리] 봉사하고 기부하는 안진공 미(美)치과 원장

 격동의 학생 시절 "내가 성장해 사회 바꾸자" 결심
 `아너 소사이어티` `생명나눔 재단` 등 기부 활동
 정년 후 사회적 기업 전환ㆍ의료조합도 만들고 싶어

 "기부는 특별한 철학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손을 내밀어 함께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2일 김해시 내외동에 위치한 미(美)치과 안진공(50) 원장을 만나 그의 내면의 향기를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안 원장은 치과 분야에서 봉사하면서도 `기부하는 의사`로 잘 알려져 있다.그는 자신의 기부행위에 대해 "특별한 철학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손을 내밀어 함께 가고자 하는 작은 마음"이라고 이야기 했다.
 안 원장은 92년 김해보건소에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면서 김해와 인연을 맺어 95년 치과병원을 개업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꾸준한 기부를 통해 1억 원 이상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또 1%의 희망 생명나눔 네트워크인 `생명나눔재단` 이사장을 맡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가 봉사하고 있다.

 -돈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없을 텐데 기부는 어떻게 해서 시작하게 됐나.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누군가가 힘들어 할 때 나와 같은 사람이 지켜봐주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 줄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가지게 돼 기부를 시작했다.
 매달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의 일정 금액을 3년에 걸쳐 꾸준하게 기부 해왔다. 그러다보니 기부 금액이 자연스럽게 누적돼 6천만 원 정도 됐고,아너 소사이어티에서 회원 제의가 들어왔다.
 이름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으나 아너 소사이어티가 좋은 의미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해 4천만 원을 보태 총 1억 원을 기부하게 됐다.물론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고 난 후에도 지금까지 꾸준히 기부를 하고 있다."
 -기부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딸이 먼저 알고 부인에게 알렸다는데 첫 반응은?
 "저의 소득의 일정부분을 생활비로 아내에게 준다. 아내는 그 금액이 적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사회통념상 충분한 액수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외의 소득에 대해서는 내가 하는 것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는 평소에 내가 검소하고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큰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때도 아마 경남은혜학교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무료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인터넷을 통해 기사화 됐다.내 딸이 우연히 그 기사를 보게 됐고 아내에게 전화를 해 알렸다고 한다.
 아내는 생활비 이외의 금액의 행방을 그 때 처음 알게 됐지만 "잘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대학생인 딸은 그 돈을 자신에게 달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치대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집이 가난해 안정적으로 늦게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을 찾다보니 치과대를 선택하게 되었다. 실은 경찰대학 2기에 지원했었다. 학력고사 성적도 좋아 합격했지만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이후 다른 의과대와 치과대에 합격했다. 많은 고심을 했지만 스스로 치과에 더 잘 맞는다는 생각에서 진학하게 됐다.
 치과대로 진학을 하고나서 학생회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6ㆍ10항쟁과 같은 암울한 시기를 겪기도 했다. 그 때 나 혼자서는 사회를 변화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스스로 성장해 사회에 돌을 던져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네트워크 병원을 김해 서상동에서 시작해 내외동ㆍ장유까지 확대한 것을 보면 경제적인 마인드가 있는 것 같다.  미 치과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선하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누구나 다 동경한다.
 그러면 치과의사를 하면서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치과를 찾는 손님들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해보자`라는 생각에서 미 치과로 이름 짓게 됐다.
 우리 치과에서 말하는 미는 외형적인 아름다움 보다 밝은 미소를 통해 보여 지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20년 넘게 치과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과 가장 힘들었던 때는.
 "환자가 치료결과에 만족해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 행복할 때 나는 내가 살아가는 존재가치를 느낀다. 이는 모든 의사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반면 내 지식과 열정을 모두 동원해 환자를 대했는 데도 치료결과가 좋지 않거나 만족하지 못할 때는 많이 힘들다. 이럴 때는 나의 존재가치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20년의 세월을 치과의사로 지내왔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환자가 생기면 `나는 아직도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라는 자책을 할 때도 많다."
 -미안하지만 첫 느낌이 그렇게 활발하거나 활동적이지는 않아 보였는데 혹시 취미생활은 어떤 것이 있는지?
 "조금은 단조로운 생활패턴이다. 별다른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매일 6시에 진료가 끝나면 자료정리와 내일 있을 진료환자를 살펴 본 뒤 집으로 향한다.
 그러면 8시반 쯤 돼 늦은 저녁을 먹은 뒤 한 시간 가량 독서를 즐긴다. 주말에는 동료 의사들과 모임을 가질 때도 있고 주로 집 뒷동산을 등산하며 보낸다."
 -앞으로의 계획은?
 "젊은 의사선생님들이 열정과 실력을 가지고 많이 성장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치과의사는 55세가 정년이라고 생각한다.
 55세가 지나면 치과의사를 그만두고 우리 미 치과를 사회적 기업으로 바꿔보고 싶다. 우선 공동 원장들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좋은 취지로써 해보고 싶은 꿈이다.
 네트워크 병원도 아마 내가 두 번째일 정도로 빨리 시작했다, 어찌 보면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다시 새로은 일들을 찾아 나서고 싶다.
 조금 더 낮은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의료혜택을 보는 그런 의료협동조합과 같은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배제돼 버린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보살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회가 우리 모두 꿈꾸는 세상이고 지향해야 될 사회라 생각한다.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안 원장은 스스로 겸손해 하면서 우리 공동체의 아름다운 미를 위해 또 다른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편집 = 최하나 기자

 원종하는 누구인가
 인제대 국제경상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김해기업연구소를 창립해 현재 고문을 맡고 있으며, 인제대ㆍ김해창업보육센터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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