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7:17 (금)
관료주의를 타파하라
관료주의를 타파하라
  • 곽숙철
  • 승인 2012.10.22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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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숙철 CnE 혁신연구소장
 부서진 의자를 교체해주기를 바랐던 관리자가 있었다. 의자가 부서진 것에 짜증이 난 그는 지원부 직원에게 다소 퉁명스럽게 굴었다. 그러자 똑같이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요청 사항을 서류로 제출하세요. 그것도 정확한 형식을 갖춘 서류로요."

 관리자는 직접 지원부를 찾아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류의 빈칸을 채웠다. 그러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책상 건너편에 있는 담당자에게 신청서를 내밀었다. 그런데 10일 후 신청서가 되돌아왔다. 거기에는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다.

 "이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9번 항목의 인증번호를 잘못 썼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새 의자가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던 관리자는 격노했다. 그는 지원부에 전화를 걸어 야단을 쳤다. 한바탕 시끄럽게 항의한 후 마음을 가라앉힌 관리자가 물었다.

 "도대체 정확한 번호가 몇 번인데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직원의 웃음소리와 함께 답변이 돌아왔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저희 일은 잘못 기입된 숫자를 찾아내는 것이고, 그쪽 분의 일은 정확한 숫자를 채워 넣는 겁니다."

 행정편의적인 관료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다. 설마 우리 회사가 그러겠느냐고? 글쎄…. 우리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함부로 단언하지 말기를. 이러한 관료주의는 사실상 모든 조직에 존재한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누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기 어려워진다. 조직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것도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것이 관료제다. 일을 잘게 자르고(전문화), 일을 맡은 사람들을 규정에 의해 움직이게 하며(공식화), 필요한 의사결정은 상층에서 하도록(집권화) 해놓으면 조직을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관료제는 분명 효율적인 조직 운영 체계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관료제가 시간이 흐를수록 관료주의로 흐른다는 것. 그래서 위의 사례처럼 규정을 경직되게 적용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부서간의 대립으로까지 이어져 조직의 스피드를 떨어뜨리며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델(Dell Computers)이 그러한 경우다. 델은 처음에는 매우 간결한 회사로 출발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복잡한 위계구조의 경영진이 점점 늘어나면서 모든 것이 느려졌고, 수익성이 악화된 델은 결국 휴렛패커드(HP)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때 창업자인 마이클 델(Michael Dell)이 CEO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다음과 같은 말로 관료주의 타파를 선언했다.

 "우리에겐 훌륭한 인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적도 있습니다. 바로, 돈을 쓰게 만들고 속도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관료주의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관료주의에 복종하게 만들었으니 우리가 그걸 고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료주의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혁신적인 경영과 탁월한 성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도의 IT기업 HCLT(HCL Technologies)의 사례를 살펴보자.

 인사, 재무와 같은 영향력 있는 지원부서가 직원들을 제대로 도우려 하지 않고 행정편의적인 관료주의에 빠져 있다고 인식한 CEO 비니트 나야르(Vineet Nayar)는 이의 타파를 위해 웹 기반의 `스마트 서비스 데스크(Smart Service Desk)`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직원들은 문제, 문의, 업무 요청 등 3가지 범주 중 한 가지를 골라 `서비스 티켓(Service Ticket)`을 발행하는데, 그 티켓은 인사, 재무, 관리, 교육개발, IT/IS, 운송 등 해당 지원부서의 관리자에게 전달된다. 티켓을 받은 관리자는 그 일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포함해 일련의 책임지표를 약속한다. 해당 관리자가 지정된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티켓은 자동으로 그의 상사에게 전달되며, 이런 방식으로 점점 상부로 올라간다. 문제가 해결되면 관리자는 티켓을 종료 처리하는데, 문제를 제기한 직원이 해결책에 만족하지 않으면 티켓 종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 HCLT는 이 시스템을 통해 고질적인 지원부서의 관료주의를 타파할 수 있었다.

 관료주의를 타파하라. 관료주의는 규정을 경직되게 적용함으로써 조직의 융통성을 저해하고, 능률성을 겨냥한 획일성으로 창의성을 말살시키며, 통제력의 집중으로 직원들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제약한다.

 관료주의는 매우 길들이기 까다로운 야수이다. 하지만 이를 길들이지 않고는 결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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