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4 22:26 (토)
제1화 영웅의 귀환<5>
제1화 영웅의 귀환<5>
  • 서휘산
  • 승인 2012.10.18 1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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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친구여! 친구여!(5)
 "빨갱이로 몰아버려!"

 백지한을 몰아치는 그들의 모습은 사생결단식이었다.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해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반쯤 죽어 나온 것이 벌써 네 번.

 끝없는 고문과 시련에 백지한도 고비는 있었다.

 `개혁을 꺾어버리고 나도 저들과 휩쓸려 편히 살고싶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한발 앞선 사람이 없다면 퇴보된 사회를 어떻게 되돌려 진일보시키겠는가?` 하며 뜻을 같이 해준 몇몇 친구들과 부모가 있었기에, 언젠가는 이 나라가 자신이 출판한 책 내용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버텨왔던 것이다.

 그러나…….

 한 발 앞서가는 건 끝없이 외로운 법.

 그리고 필연적으로 설움의 핍박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쫓아 뜬구름처럼 떠돌던 수구세력들은 백지한이라는 공동의 적이 생기자 돌연 시커먼 먹구름으로 변하더니, 이윽고 폭우가 돼 그를 덮쳤다.

 땅으로 땅으로 속절없이 떨어져 내리는 초목의 잎새들…….

 산사태가 나고 강물이 범람해 광야를 뒤덮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그 무서운 기세에 대하(大河)의 언덕에 고고히 떠있던 백지한의 개혁도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이 네 달 전, 출판사를 설립한 지 7년 만이었다.

 그리고 영봉의 무궁사 역시 창건 10년을 맞았지만 공룡처럼 커버린 비구종에 눌려 그 세가 여전히 미미했다.

 당연히 그들 두 죽마고우의 얼굴에는 언제나 회한 어린 우수가 어렸고, 또한 이 나라의 근본을 되찾아야 한다는 집념이 함께 배어 있었다.

 이윽고 시계를 바라보던 영봉이 일어섰다.

 새벽 세 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소피?"

 백지한이 눈을 들자 영봉이 빙긋 웃었다.

 "체력단련 시간일세."

 "이 야밤에? "

 영봉은 놀란 백지한의 그 말에 대답 않고 담담히 되물었다.

 "구경하려나?"

 "그럼세."

 그들은 어슴푸레한 숲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대기를 청명하게 덮고있는 새벽 하늘엔 별들이 쏟아질듯 빛나고 있었다. 오솔길은 가파르다. 그러나 영봉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 검을 메고 내딛는 걸음새도 경쾌하기 그지없어 마치 사뿐사뿐 날아오르는 것 같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가다가 영봉은, 숨을 헉헉거리며 따라오는 백지한이 마음에 걸렸는지 문득 돌아보았다.

 "그 동안 몸이 많이 상했군."

 "그려."

 숨이 찬 백지한의 소리가 갈라졌다.

 "좀 쉬었다 가면 좋으련만 내가 좀 늦어서…."

 "아닐세. 빨리 가세."

 그들은 다시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봉긋 솟은 언덕마루에 올랐다. 갑자기 들려오는 기합소리!

 "이얍! 얍!"

 "이얍!"

 "얏!"

 "얏!"

 사방이 암벽으로 막힌 계곡에서 10여 명의 스님들이 죽도를 휘드르고 있었다.

 "……!"

 백지한이 놀란 얼굴을 하고 있자 영봉이 빙그레 웃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이 검도만큼 탁월한 스승이 없네."

 그리고 그는 열 척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암벽을 훌쩍 뛰어내려 계곡에 착지했다.

 그 순간 스님들은 동작을 멈추고 죽도를 내려놓았다.

 정적이 흐르며 계곡물 소리만 졸졸 흐른다.

 스님들은 영봉을 향해 합장한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영봉이 조용히 물었다.

 "내가 좀 늦었지요?"

 앞에 앉은 젊은 스님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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