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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영웅의 귀환<3>
제1화 영웅의 귀환<3>
  • 서휘산
  • 승인 2012.10.16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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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친구여! 친구여(3)
"지금 자넨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강을 건너고 있는 걸세.
숭고한 이상과 추악한 현실 사이에 놓여진… "


 "얘긴 들었네"

 "……?"

 "자네 출판사 개혁이 부도났다는 거."

 일순 백지한의 얼굴이 허물어졌다.

 "그렇게 됐네."

 "어쩌다……?"

 영봉이 백지한의 어둡고 난감한 눈을 들여다보았다.

 "역부족이라니?"

 백지한의 대답은 썼다.

 "이 나라 국민들이 언제 민족을 찾고 뿌리를 찾는 백성이던가?"

 "어허 이 사람! 그 사이 인내심이 많이 떨어졌군."

 영봉이 달래듯 그 거룩한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따스한 이해와 우애로 넘치는 연민이 그 얼굴에 가득했다. 그러나 백지한의 말은 여전히 썼다.

 "우리 국민들에겐 사람의 혼이 없어."

 "……?"

 "동물의 혼만이 그 몸 속에 가득 담겨 있단 말일세."

 "도대체 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나?"

 "서양의 파괴적인 물질문명이 우리 고유의 정신문화를 압도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보네만."

 영봉은 동감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건가?"

 "글쎄……."

 백지한은 곤혹스런 한숨을 지었다.

 "재기해야 할거 아닌가?"

 백지한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렵네. 이런 딴따라 문화에서는."

 "어렵다……."

 가만히 중얼거리던 영봉이 갑자기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럼 머리를 깎게."

 백지한이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빚이 많네."

 "재기하기가 어렵다면서?"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잖은가?"

 영봉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백지한의 찻잔을 채웠다.

 "그래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 우리 인생의 여정이 줄곧 황홀한 꿈처럼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잖은가?"

 "……."

 "자넨 재기할 수 있을 거야."

 "고맙네."

 "시덥잖은 대답 따윈 원하지 않아."

 "……?"

 "이미 늦어버렸다고 생각치 말고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시작하게."

 "……."

 "내가 지금 자넬 도와줄건 없는가?"

 "이렇게 반겨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와주는 걸세."

 "정말 없는가?"

 영봉이 백지한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형형한 눈빛이다. 그 눈길에 압도된 백지한이 입을 열었다.

 "있네."

 "말하게."

 "민초들의 의식에 장대한 불꽃을 피워주게."

 "그건 자네 몫이 아니던가?"

 "아닐세, 아니야. 난 어렵네."

 백지한은 지긋이 눈 감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난 이제 완전히 날필(날피: 아무 것도 없는 사람)세."

 백지한의 말이 목안에서 갈라지자, 영봉 역시 잠긴 목청으로 백지한의 말을 받았다.

 "자네 마음 이해하네."

 "……."

 친구를 바라보는 백지한의 눈빛이 어두웠다.

 영봉이 그를 정시했다.

 "그러나 백련."

 "말하게."

 백지한도 정시하며 영봉의 말을 기다렸다.

 "못이 더럽다고 한탄만 한다면 연꽃은 어이 피겠는가?"

 "……!"

 "내 도와줄 테니 계속 해탈의 문을 두드리게."

 백지한은 우정어린 친구의 눈을 보며 숨을 삼켰다. 영봉은 법문(法文)과도 같은 말을 연이어 토해냈다.

 "지금 자넨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강을 건너고 있는 걸세. 숭고한 이상과 추악한 현실 사이에 놓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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