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7:38 (목)
`착한 누나` 말고 `우리 미영이`가 좋아
`착한 누나` 말고 `우리 미영이`가 좋아
  • 한상지
  • 승인 2012.10.14 1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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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상 지 라온언어심리치료센터 원장
 초등학교 2학년인 미영이는 3살 터울의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를 대신해 동생을 보살피는 생활에 익숙한 미영이는 학원이 끝나면 어린이집에 들러 동생을 데리고 와서 엄마가 미리 챙겨놓은 간식을 먹이고 부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놀아준다. 요즘 파워레인저에 푹 빠진 동생을 놀아주는 일은 미영이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칼을 휘두르고, 주먹을 들이대는 동생을 상대하다보면 가끔 동생에게 맞기도 하고, 그러다 화난 마음에 꿀밤이라도 날리면 동생은 "엄마한테 이를거야!"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겉으론 "나도 이를거야! 니가 먼저 때렸다고"라며 소리도 쳐보지만 실은 동생이 정말 엄마에게 다 일러바칠까봐 걱정을 한다. 어려서는 동생을 돌보아 주면서 스스로 대견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동생이 정말 좋기도 했지만 지금 미영이가 느끼는 동생의 존재는 자신보다 힘이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미영이는 가끔 동생이 없었으면, 혹은 막내였으면 하고 바란다고 한다.

 요즈음 친구들과의 팽이놀이에 재미를 붙인 동인이에겐 고민이 하나 생겼다. 다름 아닌 동인이의 5살짜리 남동생 때문이다. 친구들과 모여 팽이게임을 하려하면 동생은 자기도 하겠다고 나선다. 아직은 팽이를 돌리는 기술이 부족한 동생이라 질 것 같아 나중에 시켜준다고 하면 막무가내로 떼를 쓰고 울어버린다. 이에 친구들은 우는 동생 때문에 게임진행이 안되니 동인이까지 빼고 자기들끼리 할 때도 있다. 동생을 막고 동인이가 팽이를 돌리면 잘 돌아가는 팽이를 잡아채거나 물건을 던져 게임을 망쳐버린다. 아직 어린 동생이라 때리지는 못하겠고,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도 부모님은 잠시 동생을 달래다가 동생이 그래도 떼를 쓰면 동인이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동인이가 완강하게 버티면 부모님은 "넌 팽이가 중요하니, 동생이 중요하니? 팽이 게임이야 다음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동생은 이 세상에 하나뿐이잖니?"라며 오히려 화를 낸다. 때로는 동생과 함께 있는 것이 좋고, 즐겁기도 하지만 동생이 막무가내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때는 아무리 형이라도 버겁기만 하다. 이럴 때 부모님이 자신의 입장도 좀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동인이의 바램이다.

 많은 부모들이 `형제간의 경쟁과 시샘` 때문에 고민을 하고 걱정을 하지만 사실 형제간의 경쟁과 불화를 부추키는 것은 부모이다. 즉, 부모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불공평할 때 형제간의 경쟁이 불거진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았다고 느낄 때 관대해지고 반대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거나 오해받았다고 생각할 때 화를 낸다. 어떤 가정은 첫아이에게 무한한 애정과 특혜를 주어 둘째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첫째보다 더 작고 약하며 귀여운 어린 동생들에게 더 많은 배려와 사랑을 주는 가정이 더 많다.

 첫째는 흔히 "폐위된 제왕"이라고 불린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외동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마음껏 누리고, 부모 및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다 동생이 태어나게 되고,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자신을 떠받들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어린 동생에게 몰려간다.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려보려고 떼를 쓰고, 동생을 밀치면 순식간에 `나쁜 형`으로 낙인찍히게 되며, 부모를 성가시게 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한다. 첫째들은 자신을 예전처럼 대해주지 않는 부모가 미워 평생 등을 돌리고 살까도 생각하지만 아이들에게 부모와 부모의 사랑은 절실히 필요한 것이기에 첫째들은 어떻게 하면 부모가 자신을 다시 좋아해주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줄까 고심하게 된다. 여러 날에 걸친 관찰을 통해 첫째들은 자신들이 동생을 돌봐주고, 동생의 고집을 참아내며 양보해 줄 때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느덧 부모는 "우리 미영이", "우리 동인이"라고 부르는 대신 "착한 누나와 형"으로 자신들을 부른다. 칭찬을 받을 때는 잠시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찜찜한 기분도 든다. `착하다`는 말이 어느 때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동생의 행동이 진심으로 이해돼서, 동생이 정말로 예뻐서 참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에는 혹시 이러한 속마음을 들켜 부모에게 야단이라도 맞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답답함이 들기도 하며, 때론 자신을 이렇게 만든 동생과 부모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쭉 자라게 되면 가족에 대한 의무는 충실히 수행을 하지만 가족과는 정서적으로 친밀하지 않은 피곤한 어른이 될 수 있다.

 손윗 형제가 동생을 돌봐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고, 어른이 아이를 배려하듯 발달이 더 빠른 아이가 느린 아이를 도와주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부모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첫째에게 첫째의 발달수준에 적당한 책임과 양보, 참을성을 부여했는가 하는 것이다. 아직 어리기만 한 아이에게 단지 첫째라고 해서 동생의 무례함을 참고 무조건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아이는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받을 때 쉽게 좌절하며 열등감을 갖게 된다. 문제행동을 다룰 때는 서열과 상관없이 잘못된 행동은 바로잡고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며, 동생을 배려했을 때만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그 자체로서 부모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을 때, 첫째는 자신을 사랑하며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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