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실 경호처장의 방에 노크소리가 서너 번 울렸다.
"들어와요."
경호처장 김인중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경호관 백지한이 경례를 부치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어, 백과장."
이제 막 60을 넘긴 야전사령관 출신의 김인중은 땅딸막한 키에 단단한 몸을 가진 야심만만한 사내다. 그가 책상을 돌아 나오며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
백지한은 절도 있는 자세로 소파에 앉자마자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실장님."
"북한에서 고위당직자 한 명이 망명을 요청해 왔다."
"예?!"
백지한이 눈을 치떴다.
"뭐하는 사람인데요?"
"황당한이라고 김일성 대학 총장을 지낸 노동당 비서야."
"노동당 비서, 황당한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아니 그 황당한이라면 김일성을 태양처럼 숭배하도록 유일주체사상을 확립한 그 장본인 아닙니까?"
백지한은 어이가 없어 입술을 틀었다.
사실 황당한은 사상이론가로 철학 박사였다.
그는 김일성과는 같은 항렬의 친인척이었고, 남한의 국회의장과 동격인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을 거치면서 김일성 주체사상 이론을 체계화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는 김일성 뿐만 아니라 김정일로부터도 대를 물려가며 가장 신임을 받아온 인물이었다.
그런 황당한이 망명을 신청해 왔다니, 이제 삼십 중반의 젊은 백지한으로서는 도대체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가 침묵을 깼다.
"의도가 뭘까요?"
"글쎄.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고 자네한테 명령이 떨어졌어."
"무슨?"
"경호를 맡아줘야겠어."
"황당한 이의 경호를 말입니까? …제가?"
백지한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자 김인중이 이마를 찡그리고 예의 그 날카로운 시선을 번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고, 그 침묵 속에서 백지한은 긴 숨을 빨아들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북한 권력서열 열 세 번째이고 주체사상을 확립한 장본인이 가족을 버리고 도망을 오다니…….
그의 가슴에서 이윽고 한숨이 터졌다.
`끄응.`
그것은 배신행위였다. 가족에 대한 배신, 자기 양심에 대한 배신, 국가에 대한 배신, 인민에 대한 배신…….
그가 가볍게 머리를 젓고 입을 열었다.
"그 명령에 제 선택권은 전혀 없는 겁니까?"
"그래!"
신음소리를 내며 김인중의 얼굴이 위 아래로 조금 흔들리다가백지한의 눈빛에 멈추었다.
"그렇다면 제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봐."
"지금껏 우리 역사는 배신과 야합으로 점철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
"제가 볼 땐 그 황당한이란 자도 파렴치한 배신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순 없습니다."
"뭐? …그래서?"
김인중의 얼굴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백지한도 단호했다. 그 얼굴도 그 목소리도.
"한번 배신한 자는 또 다시 배신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럼 어떻게 하잔 말이야!?"
백지한은 주저거림 없이 대답했다.
"제 생각으로는 북한으로 되넘겨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물론 황당한 그 본인에겐 안된 일이지만."
"야! 백과장! 이 짜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