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는 하이나에게 박상도 사장이 벌컥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이봐! 계곡주도 몰라? 어서 홀랑 벗고 너의 유방골에 술을 부어 올리란 말씀이야!"
아! 세상에 그런 희한한 술놀이도 있구나! 암튼 오늘 고객은 조대박 사장이 부탁한 특급 VIP이므로, 그녀는 박사장의 명을 순순히 따랐다.
"하하하! 선상님! 어서 술잔을 받으십시오! 아마 당장 10년은 젊어지실 겝니다."
70대 노정객은 그녀가 만든 계곡주를 받아 단숨에 마셔버렸던 것이다.
"정치판에서 성희롱 사건으로 시끄러운데, 저도 선상님 앞에서 성희롱을 한 것 같아 송구합니다. 그나저나 선상님! 제 문제가 언제쯤 결판날까요?"
"에끼! 술맛 떨어지게 웬 걱정인가? 공천의 칼을 쥐고 좌지우지하는 그 실세가 내 보좌관이었다니까…!"
말을 마치자 40대 박상도 사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양복저고리를 벗고 와이셔츠 단추를 따내리고, 다음엔 혁대를 풀어 양복바지와 팬티까지 한꺼번에 벗어제끼는게 아닌가? 그리고는 술잔 대신 그릇을 가랑이 사이에 끼고 술병을 들어 가슴 골짜기에 부어 배꼽 아래 검은 잔디 속에 우람하게 뻗은 남근석을 적시며 쏟아지는 술로 폭포주를 만들었다. 하지만 하이나는 거부하지 않고 폭포주를 받아 원샷으로 마셔버렸다. 그때 70대 노정객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박사장 ! 이 샥시를 잘 봤지? 바로 이걸세! 큰 정치인이 되자면 이런 배포가 있어야 하네! 샥시는 나이 먹어서 가수생활을 접게 되거든 정치판으로 입문하게! 허허허!"
이윽고 70대 노정객이 무협소설의 사부처럼 엄숙하게 말했다.
"자! 그러면 공천은 내 전화 한 통이면 될 것이니까 걱정 말고, 정치 지망생이 갖춰야 할 3대 덕목을 말함세. 첫째가 줄서기를 잘 해야 하네! 여당이냐? 야당이냐? 무소속이냐? 줄을 잘못 서면 아무리 돈을 써도 낙동강 오리알이야!"
"물론 저같이 사업하는 사람은 여당에 줄을 서야죠!"
"천만에! 앞으로 선거판은 한나라당이 대구에 출마하고, 민주당이 광주에 출마해도 낙선할 수가 있어! 두번째는 가면을 잘 써야 한다구! 정치란 함부로 자신을 다 까놓으면 안돼! 알아도 모른 척! 싫어도 좋은 척! 미워도 고운 척! 좌우간 유권자의 비위를 맞춰 가면을 열개쯤 준비했다가 능수능란하게 바꿔 써야만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있단 말일세! 내가 원내총무를 할 때는 낮에는 여당 총무! 밤에는 야당 총무를 했다네!"
"선상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허허! 밤에는 야당 당수의 집을 은밀히 방문해서 우리 여당 총재님의 속내를 전하고, 야당 의원들과도 술자리를 자주 만들어 술독에 빠뜨리곤 했으니까 말일쎄! 그때도 국회의사당에서 멱살잡이를 하고 단식투쟁도 불사했지만, 야당 당수가 그러면 여당 총재는 남몰래 산삼 달인 물을 전했다네! 그러니 그 양반이 한 달 가까이 단식하고도 목숨을 부지했지! 허허!"
"셋째는 백성을 하늘 같이 알면 아무 일도 못한다네! 예로부터 왕은 하늘, 백성은 땅이거늘, 진정한 정치인이면 백성의 하늘 노릇을 해야지!"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우리 총재님! 아니 각하를 모실때 경부고속도로를 뚫는다니까, 야당 당수는 그 길에 나자빠져 포크레인으로 자기를 깔아뭉개고 가라며 아우성쳤다네! 하지만 이 나라 백성과 산업발전을 위해 기어히 강행한 각하였다구!!"
이처럼 끝없는 정치론을 설파하던 70대 노정객이 문득 하이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샥시! 먼저 가시게나. 우리끼리 나눌 얘기가 있으니…"
결국 그녀는 공연도 못하고 끝났지만, 두 사람의 대화에서 얻은 비결은 평생을 두고 써먹어도 좋을 것이었다. 아니 이미 하이나는 그것을 실천해왔다고나 할까! 그녀는 이름부터 가명에 화려한 의상과 가면을 쓴듯한 짙은 화장을 하고, 남이 작사 작곡해 준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가면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