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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수가 보이지 않는 경남도의회
싹수가 보이지 않는 경남도의회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2.07.17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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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 한 열 편집부국장
 시작부터 싹수가 노랬다. 경남도의회가 3주째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2일 의장 선거부터 모양새를 구기더니 갈수록 태산이다. 당시 새누리당 김오영 단독 후보는 1차 투표에서 부결됐다. 2차 투표에서 겨우 의장자리에 앉았는데, 야권 민주개혁연대 소속 3명이 김오영 도의회 의장의 당선 무효를 주장했다. 6일에는 민주개혁연대가 도의회 의장의 직무정기 가처분 신청을 했다. 김 의장은 아마 2년 내내 머리에 1차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자당 의원들의 얼굴이 떠오를 지 모른다. 단독 후보 찬반 투표에서 2차 투표까지 가는 의정사의 새 기록을 남긴 사실을 놔두고라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지난 4일에는 민주개혁연대가 원 구성 협상 결렬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도의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저급한 정치구조”라며 곡기를 끊었다. 도민이 보기에는 밥그릇 싸움인데 숟가락을 놓은 야권 의원들이 안쓰럽다. 단식 10여 일째를 넘기면서 탈진해 병원으로 가는 의원들이 나오고 있다. 의회 파행이 누구의 책임인지 도민들은 헷갈린다. 야권은 전반기 합의상항을 지키라고 했다가 한 발 물러나 수정안까지 내놨으니 의회 파행의 책임이 전적으로 여권에 있다는 논리다. 여권의 입장은 양보를 했으니 더 내놓을 게 없다는 강경 자세다.

 현재 가장 격렬한 스포츠 중 하나가 종합격투기(UFC)다. 옥타곤 안에서는 피 흘리는 극한 상황(ultimate)에서 한 방으로 승리를 결정짓거나 초인적 인내심을 발휘하는 선수가 이긴다. ‘신성한’ 도의회를 종합격투기장에 빚댄 것은 좀 멀리 간 생각이 들지만, 현재의 자리 다툼이 그만큼 격렬하다는 데는 고개가 숙여진다. 자기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 힘든’ 단식하는 데 나 몰라라 하는데 힘의 세기만 존재하는 무서운 링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새누리당과 민주개혁연대는 상임위원장 2석을 개혁연대 몫으로 한다는 데 거의 의견을 모은 것 같다. 근데 민주개혁연대는 새누리당이 상임위원장 2석을 주기로 하면서 예결특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포기할 것을 요구하다면 각을 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상임위원장 2석으로 합의가 된다면 이리저리 해보려는데 개혁연대가 또 ‘플러스 알파’를 요구한다며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여야 모두 이왕 싹수가 노랗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니 끝까지 가서 전과라도 더 올리겠다는 심사로 비쳐진다.

 16일로 예정됐던 본회의가 19일로 또 다시 연기됐다. 도의회가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17일부터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의정활동비를 반납하자던 김오영 의장의 제안은 양 교섭단체가 받아들이지 않아 김 의장만 의정비를 내놓게 됐다. 김 의장 혼자라도 의정비를 반환해 의장 선거에서 깎였든 체면을 만회하는 것도 나쁠 성 싶지는 않다.

 도민들이 도의회를 걱정한다. 장기 파행으로 시급한 복지예산 집행을 위한 추경예산안 등 현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도민의 삶이 어려울수록 여야가 더 협력해야 한다. 의회 싸움에 도민의 삶이 금 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여야가 링 밖을 쳐다봐야 한다. 링 안에서 처박고 싸운들 피 밖에 흘릴 게 없다. 아무도 링 밖에서 환호를 하지 않는데 말이다.

 예부터 뺀질거리는 아이는 싹수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후반기 도의회가 자리싸움으로 의장만 뽑고 다른 의장단은 이름을 못 올리고 있다. 그렇다고 하루이틀만에 원 구성이 끝날 것 같지도 않다. 도민들은 모든 도의원을 싸잡아 뺀질거린다고 푸념한다. 어른 앞에서 목을 꼿꼿이 세우고 인사 잘 안하는 아이를 보는 복장이 터진다. 싹수가 노란 도의원들을 보는 도민들은 장마철에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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