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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 참 맛나데이"에 소름이 돋는다
"오늘 국 참 맛나데이"에 소름이 돋는다
  • 경남매일
  • 승인 2012.06.2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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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추적자', 절대 권력과 부의 위선 해부하며 인기

굴지의 대기업 한오그룹의 서회장(박근형 분)은 늘 뭔가를 먹고 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정겹게 구사하는 그는 밥을 참 맛나게 먹는다.

그가 아들, 딸, 사위, 손자와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는 일반 가정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주름이 자글자글 진 얼굴 아래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의 노회함을 감춘 서회장은 나물반찬 한 젓가락, 국 한 숟가락, 밥 한 입에 오만가지 의미를 담아내며 매 순간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그들은 그의 가족이다)을 상대로 고도의 미묘하고 살 떨리는 전략을 구사한다.

직접화법은 절대 없다. 비유법만을 쓰지 직유법이 없다. 은유법과 의인법, 활유법과 대유법, 중의법 등 국어시험에 출제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복잡한 비유들이 느긋하게 이어진다.

그래서 그가 "오늘 국 참 맛나데이"라며 밝게 웃는 모습에도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은 물론, TV 화면 밖의 시청자도 소름이 쫙 돋는다.

서회장은 바로 지금 SBS TV 월화극 '추적자'에서 '악의 축'을 담당하고 있다.

'추적자'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질주 중이다.

26일 방송된 10회 시청률은 13.2%(수도권 14.2%)로 경쟁작인 MBC '빛과 그림자'의 19.2%에 뒤지지만 절대 권력과 부의 위선을 해부하고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메스를 들이댄 이 드라마의 면면은 가뭄 끝 내린 단비처럼 청량감을 전해준다.

◇"제가 청와대에 들어가면..약속드립니다" = '추적자'는 일단 그 소재의 시의성으로 시선을 붙든다.

실제로 연말 대선을 앞둔 2012년 대한민국의 시청자들에게 온갖 권모술수와 이합집산, 모함과 배신, 음모가 판을 치는 드라마 속 대선정국의 모습은 절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며 몰입하게 만든다.

유력 대선 주자 강동윤(김상중). 가난한 이발사 아들로 태어났지만 이제 대권을 목전에 둔 정계의 거물로 성장한 그는 "제가 청와대에 들어가면"이라는 말을 곧잘 내뱉는다. 그리고 그런 '전제' 뒤에는 사면, 복권, 청문회 중지, 검찰조사 중시, 특검 중지 등의 어마어마한 약속이 거침없이 뒤따른다.

그는 절대권력을 꿈꾼다. 21세기 민주사회라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여전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강동윤은 매 순간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평생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고 싶지 않기에 대통령이 되려 한다는 강동윤은 그 목표가 바로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 정의까지 가는 길은 아무리 더럽혀져도 상관없다는 논리로 무장해있는 '확신범'이다.

"큰 마차가 먼 길을 가다 보면 깔려 죽는 벌레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내 서지수(김성령)의 뺑소니 살인사건도, 자신의 살인교사도, 처가의 부정 축재와 불법 승계도 모두 덮을 수 있다.

'서민을 위한 대통령'을 표방하며 자신을 선과 정의의 상징으로 이미지 메이킹하지만 그 뒤에는 온갖 추악한 얼굴이 숨었다.

"정치란 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냐.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거지".

그런데 강동윤뿐만이 아니다. 그와 경쟁하는 다른 정치인들도, 그들에 붙어사는 세력들도, 경제계의 권력들도 다 그와 닮은꼴이다.

26일 방송에서 강동윤은 "저는 정치에 입문한 뒤 단 한 번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말한 적이 없다"고 언론 앞에서 당당하게, 참으로 뻔뻔하게 말했다.

씁쓸하게도 시청자는 그런 그의 모습이 참 낯익다.

◇"오늘 국 참 맛나데이" "나물 간이 와 이렇노"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대 부도 곧 권력임을 '추적자'는 새삼 뼈저리게 펼쳐보인다.

'추적자'의 박경수 작가는 서회장에 대해 '전화 한 통화로 총리를 호출하고 사인 하나로 수천억 투자를 결정하며 손주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수백 명의 정리해고를 지시'하는 인물이라 설명했다.

또 '언제나 온화하다. 한마디 말로 열 가지 뜻을 전달한다'고도 했다.

그는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는 사위 강동윤과의 협상을 밥 먹는 식탁에서 곧잘 한다.

그가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은 편안하게 늙어가는 건강한 노년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실상은 식탁에서 치밀하게 손자병법을 구사하는 무서운 인물이다.

40대 애 엄마가 된 큰딸 서지수를 여전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처럼 아끼며 늘 어르고 달래온 서회장은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큰아들에게 "결정하래이. 좋은 오빠가 될래는지 한오그룹 회장이 될래는지. 둘 다 될 수는 읍다"며 딸을 가차없이 버린다.

그래서 결국 서지수도 "돌아가신 엄마가 그랬어요. '네 아빠는 숨소리도 믿지 말라'고요"라고 토로하게 한다.

서회장은 "그르니께 내 약속은 현찰인데 니 약속은 어음이네?" "기다려봐라. 내도 주판 좀 두들겨봐야 하지 않겄나"라며 사위는 물론 딸과도 늘 거래하는 모습을 통해 돈 앞에 피도 눈물도 없는 '절대 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 역시도 우리는 아주 낯익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그때서야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타나는 법" = '추적자'의 미덕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우리에게 언제라도 일어날 것 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절대권력과 계좌에서 50억 원이 빠져나가도 모르는 절대 부는 언뜻 일반인과의 거리가 상당하다. 하지만 평범한 소시민이자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백홍석(손현주)에게 일어난 일과 그 일이 권력과 부의 개입으로 어처구니없이 전개돼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이보다 개연성이 높을 수 없는 듯하다.

박경수 작가는 그런 사건 전개의 궤를 웬만한 '미드(미국 드라마)' 뺨치게 빈틈없이 구성했고 극의 중심을 묵직하게 잡고 있는 손현주를 비롯해 김상중, 박근형, 류승수, 김성령 등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여기에 스피디한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연출이 가세한 '추적자'는 절대권력과 절대 부가 어떻게 일반인의 삶에 스며들고 그들의 인간성과 영혼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무섭게 그려낸다.

물론 백홍석이 시도때도없이 '탈출'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 상당한 '옥의 티'이긴 하지만 그마저도 긴박한 스토리에 빠져들면 용서가 될 정도다.

둘도 없는 우정, 동료애도 각각 30억 원이면, 10억 원이면 와장창 깨트릴 수 있음을, 대권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도 파리 목숨처럼 죽일 수 있음을, 돈으로 언론도 여론도 재판도 조작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강동윤은 딸과 아내를 잃고, 이어 친구와 동료에게도 배신당하고 울부짖는 백홍석에게 "선택의 순간이 오면 그때서야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타나는 법"이라고 '가르친다'.

◇"인생 간단해. 웃는 만큼 우는 거야" =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믿고 싶다.

서회장의 아들 서영욱(전노민)이 백홍석을 이용하면서 한 말이긴 하지만 "인생 간단해. 웃는 만큼 우는 거야"라는 말이 '추적자'의 종착점에서 빛을 발하길 시청자는 기대한다.

백홍석은 강동윤에게 총을 겨누며 "단 한 번이라도 진실을 말해"라며 절규했다.

시청자는 그가 진실을 말하길, 그래서 단죄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백홍석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래도 그의 옆에는 뒤늦게나마 정의를 좇게 된 열혈검사와 끝까지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는 형사 선후배, 그리고 양심을 잃지 않은 재벌가 아가씨가 있다.

앞으로 남은 6회, 과연 이들은 어떤 힘을 보여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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