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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빌린 패러독스’를 경계하라
‘애빌린 패러독스’를 경계하라
  • 곽숙철
  • 승인 2012.05.13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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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어느 회사에는 특이한 목적으로 구성된 팀이 있다. 바로 여섯 명의 부사장과 이사들로 구성된 `반대 전담 팀`이다. 이 팀의 목적은 어떤 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타당성 여부를 조사하는 실사 팀이 구성되면, 철저히 반대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이다.
 한번은 규모가 큰 제조업체가 이 회사에 인수합병을 제안해 왔다. 누가 봐도 수지맞는 절호의 기회처럼 보였지만, 이 회사의 CEO는 반대 팀의 보고를 받은 뒤 숙고 끝에 인수합병 제안을 거부했다. 반대 팀의 철저한 시장 분석 결과, 몇 년 사이 그 기업의 성장은 둔화가 예상됐고 부진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회사가 매출을 두 배로 올리는 기간 동안, 그 기업의 매출은 계속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미국의 잔디 깎기 기계 생산업체 토로(TORO)의 이야기이다. 이 회사의 CEO인 켄 멜로즈(Ken Melrose) 회장은 `반대 전담 팀`의 운영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거대한 조직 안에서 규모가 큰 사안을 진행할 때, 직원들이 반대의 입장에 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제 막 발견한 미개척 시장이 전도유망해 보일 때는 특히 그렇죠. 다른 경쟁업체가 뛰어들기 전에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목소리가 분위기를 주도하니까요.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반대 입장이 필요합니다. 철저히 기업의 입장에 서서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사안을 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켄 멜로즈 회장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 중에 알리바바그룹의 마윈 회장이 있다. 그는 아이디어를 냈을 때 주변에 반대자가 많으면 흐뭇하게 생각하고 90% 이상이 찬성하는 경우엔 그 아이디어를 폐기해 버린다. 누구나 쉽게 동의하는 아이디어는 이미 쓸모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윈 회장은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권장한다. 그래서 알리바바에서는 회의할 때 툭하면 언성이 높아지곤 한다.
 기원전 218년에 일어난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눈 덮인 알프스를 넘는 등 뛰어난 용병술과 전략으로 로마군과의 전투를 여러 차례 승리로 이끌었으나, 결국 로마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본국 카르타고의 지원 없이 악전고투하던 그가 로마 연합의 뛰어난 조직력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마치 소수의 리더가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리 훌륭한 리더라도 조직력이 없으면 능력과 뜻을 펼칠 수 없다. 지금처럼 경쟁이 복잡하고 스피드가 빠른 글로벌 경쟁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리더십은 뛰어난 조직력이 결합됐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뛰어난 조직이란 어떤 조직일까?
 무수히 많은 조건을 들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기본은 원활한 의사소통이다. 그리고 이 의사소통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다. 리더는 부하직원은 물론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참여시키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 설령 반대 의견이라도 말이다. 아울러 조직 내에 활발한 의견 개진이 이뤄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필요에 따라 토로 사의 반대 전담 팀과 같은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력이 발휘된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자기만 다르게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만이 반대자라고 생각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반대 의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사회 심리학에서 이와 같은 현상을 `다원적 무지` 또는 `애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라고 한다. 개인이 조직 속에서 다수의 의사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기 어려운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적이고 관료화된 조직일수록 `No!`라고 말할 줄 모르는 예스맨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기업에서 매일같이 진행되고 있는 각종 회의들. 잦은 회의가 업무 몰입에 방해가 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회의장에 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리더가 발언을 장악하고 구성원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듣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일이 잘못됐을 때 연대 책임을 질 사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리더가 의견을 물으면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Yes!`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러분의 조직이 이러한 애빌린 패러독스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지 한번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판단되면 토로처럼 `반대 전담 팀`을 운영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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