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21:52 (수)
오랜만에 보는 ‘러시안 룰렛’
오랜만에 보는 ‘러시안 룰렛’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2.04.02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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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 한 열 편집부국장
 ‘불법 사찰’ 폭로전이 한창이다. 어느 쪽 할 것 없이 돌 던지기에 바쁘다. 돌을 던지다 어느 한쪽이 맞아 피를 흘리면 좋고, 안 맞아도 손해볼 것이 없다. 총선이 일 주일 앞으로 다가왔으니, 최전방에서 모든 화력을 퍼부어야 하는 여야가 무엇을 아낄 수 있을까.

 파업 중인 KBS 새노조가 지난 29일 총리실의 3년치 사찰 내부 문건 2천619건을 단독 입수했다며 폭로전을 열었다. 이어 여야가 31일 일제히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며 서로 칼을 뺐다. 지난 31일 청와대의 반격이 시작됐다. 청와대 최금락 홍보수석이 민주통합당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폭로한 문건 가운데 80%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총리로 있던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진 사찰이라고 밝혔다. 돌을 맞은 청와대가 짱돌을 주워 던졌다.

 또 다른 돌을 던진 사람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고문이었다. 그는 1일 김해의 한 커피숍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노무현 정부 때 것은 적법한 절차에 따른 공직 감찰이라고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스스로 범죄행위를 은폐하거나 물타기 하기위해 참여정부를 끌어들이는 것은 뻔뻔한 일이라고 잔돌을 몇개 더 던졌다. 이번 문제된 자료들은 총 25명 정도로 추정되는 관련 직원 가운데 단 한 명이 보관하고 있던 자료에 불과한 빙산의 일각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돌을 더 던질 건 분명해 보인다. 청와대와 총리실은 문재인 고문의 돌을 맞고 그냥 있지 않고 또 다른 돌을 힘껏 던졌다. DJㆍ노무현 정권 때도 정치인ㆍ민간인을 사찰했다며 그 사례를 공개했다.

 1970년대 말 개봉된 영화 ‘디어 헌터’는 베트남 전쟁의 희생자인 미국인을 다뤘다. 이 영화에서 베트콩이 내기를 걸고 미국인 병사들에게 ‘러시안 룰렛’을 강요하는 장면이 나온다. 회전식 연발권총(6연발 리볼버)에 총알 한 발만 장전하고 총알의 위치를 모르도록 탄창을 돌린 뒤 상대와 돌아가면서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위험한 게임이 러시안 룰렛이다. 사실 게임이라기보다는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도박이라 할 수 있다. 이 게임으로 사람이 죽을 확률은 6분의 1이다. 돌 던지기나 탄창을 돌려 한 방 쏘아보라고 권하는 심사는 똑같다.

 불법사찰을 러시안 룰렛에 빗대는 것은 총선이 임박해 여야 모두 도박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는 듯 해서다. 양 진영이 아무리 표가 급하도 해도 민정수석실ㆍ총리실 등의 정당한 활동까지 불법 사찰로 몰아붙이고, 내사 당사자의 이름까지 서슴없이 밝히는 명예훼손까지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상대방에게 권총을 건네주고 방아쇠를 당겨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

 민간사찰 파문으로 총선 판세가 출렁이고 있다. 여야 어느 쪽이든 러시안 룰렛에서 총성이 울리면 표가 뚝뚝 떨어질 것이다. 누가 쓰러지기를 바라는 러시안 룰렛 게임을 지켜보는 국민이 사실 더 힘들다. 지금 총선정국에서 오래전 극장에서 디어 헌터를 보면서 가슴 졸리던 생각이 더 또렷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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