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2:28 (금)
낙천자들이 가는 백의종군 길
낙천자들이 가는 백의종군 길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2.03.14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류 한 열 편집부국장
 예전 우리 조상들은 흰옷을 즐겨 입었다. 아마 염색하는 게 수월치 않아 서민들은 흰옷을 입어야 했을 것이다. 본디 삼베ㆍ모시ㆍ무명ㆍ비단 등 전통 옷감은 색깔이 희기 때문에 염색을 해 멋을 냈다. 오색찬란한 비단 옷은 양반들이 입었고, 흰색의 삼베ㆍ모시ㆍ무명옷은 서민들이 주로 입었다.

 요즘 정치권에 이런 흰옷(백의, 白衣)을 입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공천을 받지 못하자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슬쩍 갖다 붙이는 말이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겠다”이다. ‘백의’는 서민이나 아직 벼슬하지 못해 직위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면 흰옷을 입고 아무런 관직 없이 군대를 따라 싸움터에 나가는 것이 백의종군이니 그들의당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하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 충언이 많은 사람들에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새누리당 3선 중진의원인 창원 진해구 김학송 의원이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당의 성공과 총선 승리에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초심으로 돌아가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부산 남구을에서 낙천이 예상된 김무성 의원이 “대한민국을 위해 백의종군을 하겠다”고 하니까 많은 낙천자들이 그의 말에 탈당을 거두고 주저앉고 있다. 김무성이 고심 끝에 꺼낸 백의종군의 약발이 먹히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 백의종군하는 이순신 장군의 우국충절(憂國忠節)을 배웠다. 왜적의 침입으로 무너지는 나라를 구한 충무공이 간신배의 모함으로 조정의 문책을 받고 사직하게 돼 두 번이나 관직 없이 백의종군했다. 백의종군에는 충무공의 숭고한 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사심 없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친 충무공을 생각하면 백의종군 운운하는 정치인들이 더 가벼워 보인다.

 정당 내 공천싸움에서 밀려난 정치인들이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는 백의종군과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내려는 충무공의 백의종군 사이에 멀어도 한참 먼 간격이 있다. 정치인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희생하는 자리가 아닌 공천 과정에서 개인의 욕심따라 뒷일을 모색하는 백의종군의 길에 누가 동정하겠는가. 한 발 물러나, 낙천한 정치인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가짐을 백의종군에 빗댔다면 그나마 들어줄 만하다.

 정치인들이여, 특히 낙천하고 탈당해 무소속 출마가 여의치 못해 백의종군을 결정했다면 그 숭고한 뜻을 새겨보기 바란다. 진정으로 백의종군하려면 진정 어린 마음으로 서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정치판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영달만을 보고 걸었다면 백의종군은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는 길이다. 4ㆍ11총선을 20여 일 앞두고 여야의 낙천자들이 무소속 출마의 뜻을 꺾고 백의종군하려면 그 ‘하얀 뜻’을 떠올려야 한다. 만약 자신의 흑심을 잠시 숨기고 백의종군의 길을 택했다면 당장 집어치우라고 권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