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6:30 (금)
이한 감독 "'완득이' 대박 예상 못해"
이한 감독 "'완득이' 대박 예상 못해"
  • 경남매일
  • 승인 2011.11.13 1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0만 돌파.."계속 '착한 영화' 만들고 싶어"
"흥행을 기대는 했지만 사실 이 정도로 잘 될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요즘 계속 놀라고 있어요."
12일 관객 300만 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기준)을 돌파한 영화 '완득이'의 이한(41) 감독을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축하한다는 기자의 말에 수줍어하며 이렇게 답했다.

   순제작비 29억 원, 총제작비 50억여 원이 들어간,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제치고 개봉 이후 3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어떤 자극적인 소재도 없이 사제지간, 결혼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 것만으로 소위 '대박'을 터뜨려 영화계 안팎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 영화는 흥행뿐만 아니라 평단과 언론의 호평을 받았고 관객들 사이에서도 '착하고 재미있는 영화'로 입소문이 나 학교나 관공서, 기업들의 단체 관람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12세 이상 관람가'라는 폭넓은 관람 등급에 수능시험을 끝낸 수험생들까지 극장을 찾는다면, 400만도 어렵지 않게 넘을 기세다.

   그러나 이한 감독은 영화의 성공을 모두 원작과 배우, 스태프들의 공으로 돌렸다. 그는 '완득이'라는 영화와 참으로 닮아 있는 사람이었다.

  

"작년 3월 유비유필름(제작사) 대표에게서 원작(김려령 作)과 시나리오 초고를 받아 읽었는데,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책을 아주 즐겨 읽는 편은 아닌데, '완득이'는 한 번에 다 읽히더군요. 재미있으면서도 때론 가슴을 적시는 부분도 참 좋았고요. 재미만큼 '의미'도 있다고 느꼈죠. 그래서 원래 준비하고 있던 다른 작품이 있었는데도, 바로 연락해서 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죠."
배창호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그는 2002년 '연애소설'로 데뷔한 뒤 '내 사랑'(2007), '청춘만화'(2006) 등 줄곧 멜로와 로맨틱코미디물만 손대 왔다. 그런 기조에서 보면 꽤 사회성이 있는 작품인 '완득이'는 그의 스타일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셈.

   "제가 원래 예쁜 사랑 얘기를 좋아하는데, 너무 예쁜 것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앞으로도 예쁘고 착한 것을 추구하는 큰 기조를 유지하긴 하겠지만, 그런 선을 조금은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러다가 '완득이'를 만나고 '어쩌면 이게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런 영화를 내가 할 수 있을까, 자격이 될까 하는 걱정이었죠. 그런데, 지금 안 하면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달려들었죠."
그래도 로맨스 장르에서 다져진 실력은 이번 영화에서도 살짝 발휘됐다. 원작에는 없던 '호정'과 '윤아'라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내 각각 '동주' '완득이'와 러브 라인을 그리게 했다. 이런 설정은 남자들만 나오는 이야기를 꽤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줬다.

   그 외에도 그는 원작을 각색하면서 여러 드라마틱한 전개를 시도했지만, 결국 원작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제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원작을 10번 넘게 고쳤는데도, 더 좋아지지 않더군요. 원래 갖고 있던 색깔이 없어지는 것도 싫었고요. 완득이가 복싱으로 너무 성공한 모습을 보인다면, 분명히 꾸민 것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했죠."
영화화하는 데 가장 힘들었던 점이 뭐냐고 물었다.

   "원작의 서술이 완득이의 시점으로만 흐른다는 거였죠. 이걸 어떻게 완득이와 동주선생님 사이에서 균등하게 배분하느냐가 고민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비슷한 비중으로 가게끔 많이 신경을 썼어요."
영화의 성공 요인으로 두 주연배우 김윤석과 유아인의 빛나는 앙상블을 빼놓을 수 없다.

   "연기자들이 그 역에 안 어울렸다면, 이 영화는 리얼리티를 갖지 못했을 거예요. 윤석 선배는 원작을 읽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하나같이 추천한 배우였고요, 유아인 씨는 오디션을 치러 뽑았어요. 오디션을 본 다른 젊은 배우들 중에는 연기를 잘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완득이에는 잘 어울리지가 않았는데, 유아인 씨는 딱 완득이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스스로 "카리스마가 너무 없어서 걱정"이라고 할 정도로 스태프나 배우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거나 화를 내지 못하는 성격인 이 감독은 연기 지도 역시 "특별히 한 게 없다"며 겸손해했다.

   "윤석 선배와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엄청 얘기를 많이 했고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들도 같이 만나러 다니며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잡았기 때문에 딱히 이렇게 해달라 말한 건 없었어요. 그저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의논하는 정도였죠. 아인 씨와는 촬영 전에 얘기를 많이 했는데, '완득이는 밥은 어떻게 먹을까, 말은 어떻게 할까, 걸음걸이는 어떨까' 하는 것들을 얘기하면서 스스로 점점 완득이를 찾아가게 했죠."
촬영은 겨우 2개월에 끝냈지만,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완득이 엄마인 필리핀 여성과 교회에서 사는 이주노동자 '하산'을 캐스팅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고, 영화의 배경인 완득이네 동네를 찾는 데에도 상당한 발품을 팔았다고 한다.

   "완득이와 동주선생님이 사는 옥탑방 동네를 찾는 데 세 달이 걸렸어요. 두 집이 마주보고 있어야 하고, 중간에 골목도 있어야 하고, 뷰(주변 경관)도 만족시키는 데가 많지 않았거든요. '햇반'을 던지는 거리와 각도도 맞아야 하고 앞집 아저씨네 집도 가까이 있어야 하잖아요. 골목도 너무 휑하면 안되고요…."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결국 촬영지가 된 곳은 성남시의 오래된 주택가. 조그만 교회까지 있어 모든 조건이 들어맞는 곳이었다.

   감독 스스로 생각하는 영화의 성공 요인은 뭘까.

   "영화가 품고 있는 '마음'이 좋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등장인물들 모두 지금 우리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소외돼 있고 눈에 자주 안 띌 뿐인데…, 그런 분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관객들의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유머 코드가 적절히 통한 것도 같고요. 어머니가 아들을 껴안는 모습은 뿌듯하고 찡하고, 완득이가 웃으면 관객도 기분이 좋아지고…."
그는 "기본적으론 사람들이 착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좋게 본다면, 그분들(관객들) 역시 좋은 분들이 아닌가 한다"며 관객들에게도 공을 돌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