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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창(我歌査唱)
아가사창(我歌査唱)
  • 한민지
  • 승인 2011.11.06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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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민 지 사회부 기자
  아가사창. 나에게 책망을 들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나를 책망할 때 쓰는 말이다.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도둑이 되레 매를 든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본지는 지난 2일 `스스로 무너뜨린 교권`이란 제목의 기사로 교육현장의 잘못된 모습을 고발했다.

 이 기사가 나간 뒷날. `조금은 추측과 과장`이라는 한 통의 메일이 학교 관계자로부터 왔다. 꽤나 장문이다.

 이 메일에는 당시 발생된 일의 자세한 상황과 설명들은 물론. 기자에게 사회정의를 위한 정론을 펴주길 바란다는 당부의 글귀 등이 첨부돼 있었다.

 `사회정의를 위한 정론(正論)`, 기자는 고민에 빠졌다. 당시 그 기사가 정론이 아니란 말인지. 어떤 형태로 당시의 사건을 기사화 하는 것이 정당하고 이치에 합당한 것인지. 자신의 이익여부에 따라 기사의 좋고 그름이 구분 되는 건지.

 스물여섯 살짜리 새내기 여기자는 어른이 보낸 메일을 반복해서 정독했다. 기사에 문제점이 없었는지 점검하고 또 더듬어 봤다.

 그런데 왜 아가사창(我歌査唱)이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말이 갑자기 생각날까. 어렴풋이 생각난 이 말의 본래 뜻과 쓰임새를 포털사이트에서 찾아봤다.

 어른이 보내주신 메일의 당부말씀처럼 사회정의를 위한 정론(正論)을 펼치기로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수업 중에 싸움박질 한 선생님의 추태는 어떤 말로 해명해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장시간 비디오 시청으로 아이들의 학습을 대체하면서 발생한 학습권침해는 연수 떠난 선생님이나 학교 측, 교육당국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미디어를 활용한 교육법도 훌륭하고 효과적인 수업방법이란 주장에 대해 동의한다. 그러나 자율적 규제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 짐작되는 8세의 아이들에게 장시간 외딴 교실에서 지속된 비디오 시청은 정상교육을 포기한 방임이기에 이르는 말이다.

 선생님 간의 싸움 추태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교사이기 전에 감정이 있는 사회인이기에 그럴 수도 있으니 이해하라는 제안은 납득할 수 없다.

 그들은 선생님이다. 아이들 앞에 비춰진 선생님의 모습이 추하면 존경받을 수 없다. 존경 받지 못한 선생님으로부터는 배울 게 없다. 그들은 이미 선생님의 자격을 상실했으며 동료 교사들의 교권마저 무너뜨렸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발생 한 후 상대 선생님을 비판하는 글이 인터넷에 유포됐다. 게재한 명의자는 자신의 이름이 도용당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영특한 아이들은 그들끼리 대화에서 이를 화젯거리로 삼는다. 이런 아이들에 비춰진 선생님의 모습. 참 한심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다.

 "정론직필 하겠습니다. 부디 아가사창이나 적반하장은 제발 좀 하지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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