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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가방은 짧고 명품 말은 길다
명품 가방은 짧고 명품 말은 길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1.10.17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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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 한 열 편집부 국장
 명품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여성들이 메는 이름난 가방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심지어 억 단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불경기에도 명품 세일을 하면 백화점 문이 열리기 몇 시간 전부터 ‘명품족’ 여성들이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명품 가방과 짝퉁 가방은 비가 오는 날이면 구별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짝퉁 가방을 멘 여성은 갑자기 비가 오면 머리에 가방을 받치지만, 명품 가방를 멘 여성은 가방을 가슴에 안는다. 또 다른 명품 이야기. 한 벌에 450만 원 하는 양복을 입은 남성이 처음에 몹시 태가 났다. 이 신사는 사시사철 이 명품 양복을 입었다는 데…. 이 명품 옷 신사는 한여름 더위와 한겨울 추위를 그나마 쉽게 참을 수 있었다. 명품 양복이 그런 수고를 잊게 만들었다는 소문이다.

 명품을 걸치고 메는 우리는 마음과 생각도 명품이 된다는 착각을 간혹 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이런 ‘명품 병’에 잘 걸리는 데, 이들이 입을 열면 명품에서 받은 감동이 싹 가시는 경우가 흔하다. 명품 스피치가 있었다면 명품 옷과 가방이 빛을 발했을 텐데…. 명품 옷과 가방을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명품 말솜씨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처음 컴퓨터 운영체제를 만들어 사생결단을 할 때 빌 게이츠가 승리한 이유 중 하나는 설득 스피치가 앞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후 애플사가 새로운 제품을 만들면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잡스는 초반 부진을 설득 능력을 계발해 전 세계인이 아이폰 등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말이 명품이어야 사람이 명품이 된다는 걸 스티브 잡스가 보여줬다. 지난 5일 그가 죽었어도 그는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이 향후에도 경쟁력을 갖출지에 대해서는 현재 여러 전망들이 있다. 스티브 잡스 사망이 IT 산업에 미칠 파장을 정확히 예측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의 말은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은 젊은이들에게 큰 도전을 던져줬다.

 “하루하루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성공할 것입니다.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라고 말입니다. 아니라는 대답이 여러 날 계속해서 나오게 되면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한 권이 책이나 한 마디의 말이 변화의 물꼬를 틀 때가 많다. 그 만큼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말을 가려해야 하고 그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운동이 뜨겁다.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범야권 박원순 무소속 후보가 엎치락뒤치락 오차범위 내에서 ‘초접전’을 벌이고 있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선거에서는 막판에 숱한 막말이 나오고 상대 후보를 ‘말의 칼’로 넘어뜨리려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승리를 위해 물불을 가릴 틈이 없지만, 이럴 때 명품 말로 단장한 후보들을 보고 싶은 게 유권자들의 욕심이라면 과한 것일까. 명품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질 수 없지만 8일 앞으로 다가온 보궐선거 운동 현장에서 모든 후보들의 절제된 말의 성찬이 풍성하게 펼쳐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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