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산업의 메카는 진주여야
도축산업의 메카는 진주여야
  • 박태홍
  • 승인 2011.10.1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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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태 홍 본지 대표이사 회장
 예로부터 진주는 소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진주의 지리적 여건이 강을 끼고 양쪽으로 초원이 펼쳐져 소를 기를수 밖에 없는 입지적인 조건이 됐기 때문이리라. 농지가 있으니 농사를 지을 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를 잡는 도축산업도 예전부터 크게 발전, 신선한 육고기는 물론이고 가파치들이 만든 소가죽공예품도 다른 지역보다 높게 평가됐다.

 필자가 태어났을 때는 현 망경동 섭천이라는 곳에서 소가 도축돼 각 지역 또는 시장으로 공급됐다. 그 뒤 정확하지는 않지만 망경동 지역이 주거지역으로 확장되면서 도축장이 현 이현동 숯골, 지금의 덕산아파트가 지어진 자리로 옮겨졌다.

 이현동이 주거지역으로 변하면서 도축장은 1982년 상평공단 내로 이주하게 된다. (주)대화라는 회사명으로 상평공단으로 옮겨진 당시에는 도축장의 허가사항인 5천㎡에서 면적이 다소 (18㎡) 모자랐다. 그러나 이웃 공장의 임대 배려로 2006년까지는 도축장의 기능을 제대로 다하면서 최신 설비를 설치하는 등 현대식으로 공장설립도 끝마쳤다. 그러나 (주)대화는 최신식 설비 투자에 따른 경영상의 적자로 2007년 3월 (주)아시아씨앤아이에게 경매로 넘어간다.

 그 당시 (주)아시아씨앤아이는 예전에 이웃으로부터 임대했던 18㎡의 부지를 확보치 못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때문에 소를 도축하지 못하고 규정상 돼지만을 도축했다. 이로 인해 적자는 늘어났고 금융이자는 물론 종사자들의 급료마저 체불하는 지경에 처해졌다.

 고로 진주의 도축산업은 사장위기에 놓였고 시는 세금 및 각종 공과금을 거둬 들이지 못해 손해고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육농가, 식육점, 운송업자, 임직원 등 1천여 명의 축산농가가 시름에 잠겨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현 사업주인 (주)아시아씨앤아이가 더 이상 투자의욕을 상실, 도축장이 경매에 부쳐져 이 달 말 1차 경매가 예정돼 있지만 경매가가 66억 7천만 원에 달해 투자자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때 축협, 축산기업조합, 축산진흥연구소 등은 진주 도축산업의 세밀한 경영분석으로 투자자를 영입, 진주의 도축산업 정상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도축산업의 쇠퇴화는 사육농가와 직결된다. 그러다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119회를 개최해 온 진주소싸움의 명성도 1923년 소를 도축하던 사람들이 신분해방운동 또는 인권운동으로 성화시킨 진주의 형평사운동 진주정신도 퇴색되는 것 아닌가 싶어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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