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제가 어디로 걸어갈지 모르겠지만 어딜 걸어가도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 김규리의 눈은 빛났고 목소리는 다부졌다.

   지난 23일 홍대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나흘 전 끝난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의 여운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자다가 1~2시간에 한번씩 일어날 정도로 마지막 무대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음에 어떤 도전을 할지 모르겠지만 큰 자신감을 얻었다. 마음을 먹으니까 안되는 게 없더라"는 말에서는 도전을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전문 댄서 김강산과 조를 이룬 김규리는 지난 19일 열린 '댄싱 위드 더 스타' 결승전에서 문희준, 안혜상 조에 밀려 아쉽게 2위를 기록했다.

   그는 "1등을 못해서 아쉬운 게 아니라 그동안 준비했던 무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속상하다"며 "마지막 무대에서 감사를 전하며 잘 마무리하고 싶었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첫 번째 차차차 공연에서 의상을 교체하다 실수를 범한 게 패착이 됐다. 이후 호흡이 흐트러지면서 준비했던 공연을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고 김규리는 공연을 마친 뒤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원래 친구 역할을 하는 댄서들이 옷을 벗기게 됐었지만 현장에서 강산 씨가 벗기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최종 리허설에서 실수가 없었는데 생방송에서 실수를 하니까 완전 패닉이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박자가 다 지나갔더라고요. 할 수 없이 중간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그나마 연습을 많이 해서 동작이 몸에 뱄기 때문에 공연이 그만큼 나왔던 것 같아요."
그가 처음에 '댄싱 위드 더 스타'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의외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온 배우가 생소한 분야에 굳이 도전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적지 않았다.

   그가 밝힌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삶의 활력을 찾는 것.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었어요. 그전에는 스케줄 외에 거의 집에 있었어요. 제가 '집순이'거든요. 그런데 매주 생방송으로 치열하게 하다보니 소극적이고 움츠러들려던 제 자신이 극적으로 밖으로 튀어나오더라고요."
대중의 의구심과 달리 그의 춤실력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무대에서 빛나리란 걸 예상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김규리는 첫 번째 무대부터 범상치 않은 실력을 보이더니 두번째 무대에서는 프로 댄서 못지않은 탱고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언니가 안무가로 센스를 타고나기도 했지만 피나는 연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일주일 내내 하루 최소 4~5시간씩 연습에 매달렸다. 정확한 동작을 위해 연습 전 1시간씩 근력 운동도 했다. 몸 곳곳에 멍이 들고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혔지만 그는 "덕분에 근육을 얻었다"며 웃었다.

   뭐니뭐니해도 최대 수확은 자신감이었다.

   "이 무대는 자신감이 없으면 안 돼요. 나는 춤추는 새나 나비 같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낼 수 있어요. 없으면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해요. 그러다보니 진짜 자신감이 생겼어요.(웃음) 처음에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중간에는 해볼만 한데라고 생각했고 끝나고는 다른 것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팬들의 사랑도 빼놓을 수 없는 선물이었다. 그와 김강산을 응원하는 시청자들은 커플 블로그를 만들고 도시락을 직접 보내주며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그는 "내 무대에 충실했을 뿐인데 같이 울고 웃으면서 함께 그 시간을 즐겨주셔서 너무 고맙다"며 "그분들로 인해 어느새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며 감격했다.

김규리는 기억에 남는 무대로 지난달 22일 방송에서 선보인 룸바를 꼽았다. 당시 그는 세상을 뜬 어머니와 동료 배우 박용하를 생각하며 박용하의 노래 '처음 그날처럼'에 맞춰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그는 "다른 무대는 저를 위한 무대였는데 그 무대만큼은 엄마와 용하 오빠를 위해 춤을 췄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그가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도전은 늦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늦지 않았으니까 아름다운 도전을 해보라는 것과 나도 이렇게 변했으니 열정을 다해서 뭔가를 하면 여러분도 원하는 걸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힘줘 말했다.

   김규리는 1등을 목표로 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무대에서 구를 뻔한 적도 있었고 마지막 3주는 감기 때문에 매주 링거를 맞고 연습에 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즐거움이었다.

   "원래 노래와 춤을 사랑하는데 음악을 즐겼고 춤을 즐겼어요. 제 가슴에 충실했고 음악이랑 춤을 추는 저 자신이 너무 좋았어요. 순간순간 치열함을 즐겼던 것 같아요."
춤을 정식으로 배워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지만 그는 학창시절부터 춤과 노래를 사랑했다.

"어렸을 때는 너무 소심한 아이였어요. 말을 할 때 토씨 하나까지도 머릿속으로 다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중학교 1학년 소풍 때 장기자랑 시간에 등 떠밀려 나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영문도 모르고 막춤을 췄는데 죽을 거 같이 창피하면서도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이후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 1년에 한두번 소풍이나 축제처럼 무대에 설 기회가 있으면 친구들을 모아 무대에 섰다.

   그는 "그런 무대를 통해 조금씩 나를 표현했다. 나를 처음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노래와 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기회가 닿으면 자신의 노래가 담긴 앨범을 갖고 싶다는 그는 힘들게 배운 만큼 앞으로 계속 춤을 추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는 "그간의 무대는 겉옷만 걸치고 밖에 뛰어나간 거랑 같다"며 "시간이 된다면 기본기를 제대로 닦아서 진정한 특기로 발전시켜보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