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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산동네 <15>
꿈꾸는 산동네 <15>
  • 경남매일
  • 승인 2011.07.1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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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화 민복의 꿈 <1>
글 : 임 상 현 / 그림 : 김 언 미

 동출이 옷걸이로 사용할 못을 박고 하는 사이에 양례가 깔끔하게 짐을 정리하고 나니 꽤 늦은 시간이 되었다. 아직도 민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라도 놓여 있으면 어떤 일인지 연락해보련만 전화도 없이 마냥 시간만 지나가고 있었다. 벽에 달린 괘종시계가 9점을 치고도 30여분이 지날 때쯤 민복이 한 손에 봉지를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집에 당도했다.

 "아버지, 어머니 오늘 이사한다고 고생 많았지예. 요즘 수출 물량이 늘어 오늘도 잔업을 하고 왔어예." "어대? 민복아. 우리사 그렇다 치더라도 니가 매일 고생 많다.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고 다니면서 밥이라도 제대로 챙겨 묵고 다녔는지 내 맘이 아푸다. 이 손 보거라. 많이 까칠해졌네. " "엄마도 걱정 마세요. 이 딸이 누구 딸인데. 야근하면 회사에서 식사도 제공해주고. 나야 우리 가족들이 이제부터 오순도순 같이 살게 되었으니 너무 좋네. 호호." 민복은 봉지에서 먹을 것을 잔뜩 꺼내 놓았다. 물론 동출이 좋아하는 소주도 한 병 들어 있었다. 동출이 흡족한듯 입이 귀에 걸렸다.

 민복이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산에 있는 공장에 취직한 지가 벌써 2년이 돼가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녔다면 이제 고 2로 한창 주전부리나 하고 용돈이나 타 쓸 나이였다. 일찍부터 고생을 하여 벌써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쓰라린 맛을 터득해버린 듯하여 동출은 그런 딸이 자꾸만 안쓰러웠다. 아내도 시시콜콜 모든 것을 다 털어 놓지는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민복이 보내온 땀 묻은 돈을 꼬박꼬박 읍내에 있는 은행에 묻어 둔다는 것을 짐작으로 알고 있었다.

 "그게 어떤 돈이라고 함부로 쓰겠습니꺼? 저금 해놨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고등학교에 보내이시더. 민복이 갸가 얼마나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겠습니꺼? 공부도 남들한테 뒤지지도 않았고 애살도 참 많았는데. 집안 형편이 이렇다보니 지풀에 고집을 꺾은 기라." 민복이 처음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한다고 무던히 고집을 부렸었다. 하지만 집안에서 아무도 그녀편이 돼주지 못했다. 동출은 당시 기집애가 적당히 배우고 취직했다 시집만 잘 가면 그만이지 했고 양례는 집안형편을 빗대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어린 민석마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도시로 가서 용돈과 좋은 옷을 사주는 누나들을 둔 친구들을 은근히 부러워해왔던 터라 속으로는 누나가 빨리 취직하기만을 바랬으니.

 민복은 용케도 잘 적응하고 있었다. 무던하고 착실해서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었다. 민복이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만든 와이셔츠는 주문자 생산방식으로 전량이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경기가 호황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물량은 점차 증가일로에 놓여 있었다. 민복은 자신이 받은 월급으로 자취방 월세에다 밥값과 용돈을 제하고 고향에다 돈을 부쳐 주곤 했는데 점차 다른 생각들이 꿈틀거리며 자리 잡았다. 회사생활 2 년 만에 터득한 사회경험도 쓰라린 감회로 와 닿았다. 회사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중퇴자,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사람, 자신처럼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더러 있었고 드물게 고등학교 졸업자도 있었다. 대개는 초등학교 졸업자가 주류를 이뤘다. 회사에서 하는 일도 재단부는 규격대로 부지런히 옷을 재단하고 나면 완성부에서는 미싱대에 앉아 옷을 갈무리하는 단순한 작업방식이었다. 민복이 생각하기에도 정해진 시간 내에 옷을 하나라도 더 생산할 수 있는 숙련공이 회사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미싱대에 앉아 옷을 여미는 사람이 초등학교를 나왔건 무학이었건 작업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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