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6:45 (목)
꿈꾸는 산동네 <14>
꿈꾸는 산동네 <14>
  • 경남매일
  • 승인 2011.07.07 1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 7화 산동네
글 : 임 상 현 / 그림 : 김 언 미

도시로 이사를 온 첫날부터 민석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촌에 살 때는 비록 크지는 않아도 공부하고 싶으면 조용히 공부하고 그러다 피곤하면 드러누워 공상을 즐기던 자신의 방이 덩그러니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자그만 집들이 개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대문도 없이 고작 미닫이 문이었다. 바로 옆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숫제 같은 집에서 싸우는 만큼이나 가깝게 들리고 어떨 땐 미닫이 문틈으로 앞집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일 때도 있었다. 불편한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방은 2개인데 하나는 너무 작아 민복이 누나와 같이 지내는 것이 불편하여 안방에 붙어있는 다락방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안방에는 사다리로 올라가는 다락방이 설치되어 있었다.

민석은 이삿짐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집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 여유 공간이 전혀 없는 자그마한 집들이 계속 이어진 지대 위로는 소나무가 자라는 야산이었다. 소나무 지대 중간쯤에 마침 어른 두어 명이 앉을만한 바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민석은 그곳으로 달려가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위에 앉아 있자니 며칠 동안 음식이라곤 구경 못해본 것 같은 후줄근하고 추레해 보이는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지나갔다. 민석은 그곳에 잠시 앉아있다 가장 높아 보이는 지대로 옮겨갔다. 그곳에서는 해운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데 마침 바닷가 주변의 호텔들이 막 전기불을 밝히고 있었다. 산동네 치곤 전망이 제법 좋은 곳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다 민석은 산동네의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바닷가를 향해 터벅터벅 내려가기 시작했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였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너른 바다에 압도되어 한동안 꿈쩍 않고 바라보았다. 백사장은 엄청나게 너른데 비해 날씨가 쌀쌀해진 탓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 호젓했다. 백사장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팔짱을 낀 연인들이 호호거리며 스쳐갔다. 호텔들은 그 사이 전체가 환하게 불빛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바라보기에도 웅장했다. 시골의 기와집이나 초가집만 보고 자랐던 민석은 호화 찬란함에 그만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민석은 눈이 부시는 호텔 보기를 그만두고 이제는 서서히 백사장에서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집이 어디쯤인지 가늠해 보았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아 한참동안 자리를 옮겨가서야 조금 시야에 들어왔다. 산동네에 있는 몇 집에서 마침 반딧불 같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곳 호텔들과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초라한 몰골의 집들을 바라 보자니 자신도 모르게 어깨 죽지에 힘이 쭉 빠졌다. 두리번거리던 민석의 시야에 백사장 바로 너머로 자리 잡은 APT 밀집촌이 들어왔다. 가정생활도 저렇게 호텔처럼 생긴 빌딩 안에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로웠다.

‘아참! 엄마가 심부름 시킬 일이 있을지 모르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는데.’

불현듯 민석이 그 생각을 떠올렸고 총총 걸음으로 백사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이구 민석아. 어데 갔다 이제 오노? 너거 아부지가 못 사오라고 아까부터 너를 찾더만.”

“알았습니더. 지금 댕겨 오겠습니더.”

“일없다. 너거 아부지가 직접 사오겠다고 진즉에 나가셨다.”

민석이 무안하여 방문턱에 걸터 앉았다. 민복이 누나는 공장일이 바쁜지 이삿날인데도 귀가가 늦어지고 있었다.

못을 사러갔던 동출은 한참 만에 술한잔으로 불콰해진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오다가 종복이를 만났네 허허.”

“종복씨라 카면 오년 전에 이사간 합천댁?”

“와 아니겄나?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문틈으로 나를 발견하는 통에 붙잡혀 억지로 몇 잔 얻어 마시고 왔지. 허허 . 그 양반 지금 공사장에 일 나가고 있다는데, 마침 어제 허리를 삐긋해 오늘 하루 쉰다 카데. 좋은 데 일자리 구해보고 정 할 데 없다면 공사장이나 같이 다니자 카데. 허허. 자꾸 한잔만 더하고 가라는데 지금 이삿짐이 덜 정리 되었다 카고 얼른 도망 온 기라.”

“연락처는 받아 놨습니꺼?”

“하모. 이 근방에 산다 카데. 지도 며칠 있다 인사차 우리 집에 한번 들린다 캐서. 우리 집 약도를 그려주고 왔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