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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산동네 <10>
꿈꾸는 산동네 <10>
  • 경남매일
  • 승인 2011.07.0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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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핑계
글 : 임 상 현 / 그림 : 김 언 미

 점심식사를 마친 동호는 비서가 끓어주는 작설차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전전날 밤 술에 취해 저지른 자신의 행동이 슬슬 후회가 되고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더라도 그렇지 그 땐 제 정신이 아니었어. 이제 겨우 여고생 정도인 딸 같은 애한테 내가 미쳤지 미쳤어.

 사실 그날 오후에 회사일로 거래처 손님들과 골프를 친 후 술을 마시고 늦지 않게 집에 들어온 것 까지는 좋았다. 마침 토요일 저녁이라 서울에서 민경도 내려와 있다고 했다. 헌데 집에 들어오니 너무 조용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보니 소파에 누워 하얀 허벅지살을 드러내놓고 자고 있는 민복이 맨 처음 눈에 띄었다. 민복은 시골아이 답지 않게 예쁘고 영특하게 보여 어릴 적부터 시골에 가면 귀여워 해주던 질녀였다.

 동호는 안방 문을 열어보았다. 아직 아내와 민경은 돌아오지 않았다. 병철의 방도 열어보니 코를 가볍게 골며 세상모르게 곤히 자고 있었다. 다시 거실로 돌아온 동호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돌아올 때까지도 민복은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동호는 민복이 자고 있는 소파 옆에 앉았다. 현관은 이미 동호가 은은한 미등으로 바꾼 뒤였다. 술기운 탓인지 민복의 드러난 허벅지 탓인지 순간적으로 동호는 해서는 안 될 충동에 빠졌다. 그나마 언제 들어올지도 모를 아내와 딸이 두려워 애무만 하는 것으로 그친 것만도 다행이면 다행이었다.

 동호는 차를 마시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만일 이 일이 새어나가면 어떻게 한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 민복이 동출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면 걔가 가만 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내가 알고 있기에 민복은 그 때 분명히 자고 있었어. 그러다 동호는 그 때 일을 더듬어 간다. 민복이 나중에 몸을 뒤척였지. 그리고 분명 몸을 비틀었어. 그 때 벌써 잠이 달아나고 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바로 그 순간 동호는 뭔가 뒤통수로 한 대 얻어맞는 충격이 왔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민복이 자신을 대하던 행동이었다. 자신과 마주치면 시선을 의식적으로 피해 버리고 같은 자리에 있기를 꺼리던 민복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앞으로 동출과 민복을 어떻게 대하지. 방법은 하루라도 빨리 민복을 내보내는 일이었다.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조건 잡아 떼는 것이다. 뭐 그 정도의 가벼운 애무가 큰 문제가 될까. 아내 말처럼 겨우 중학교만 나온 촌닭 같은 애가 날뛰어 봤자지 얼마나 큰 일이 있을라고. 그래서 선심이나 써듯 공장장을 불러 여자애가 할 수 있는 찾아보라고 지시를 막 내리려고 할 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당신." "예. 저예요. 방금 민복이 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취직을 했다네요. 그래서 따로 인사하러 오지 않는다니 그렇게 알고 있으랍디다. 지딴에 서운한 일이 있었나? 그렇게 심하게 대해준 일은 없는 것 같은데…." "방은 어떻게 하구?" "직장을 구해 주는 일에 뭐 크게 관심없더만 그래도 걱정이 되긴 하나 보네. 기숙사로 들어 갔답니다." 전화를 끊고 난 동호는 휴우 한 숨을 내쉬었다. 급한 불을 끈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도 저질렀는데, 자신이 직장을 잡는 일에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한 일이 큰 빚으로 남았다. 이제는 동출의 집안과는 가까이 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예감이 자리를 잡았다.

 자신이 결혼 전 아내 연숙이 동출과 동창이상으로 가까운 사이라는 걸 언젠가 주변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자신은 연숙의 경제력이 절실히 필요했고 연숙의 미모에 반해 자잘한 과거는 덮어 주려고 했다. 그들의 사랑은 한 때의 불장난쯤으로 치부했고 젊은 시절에 흔히 있을 법한 한 때의 추억으로 여겼다. 자신이 매파를 통해 청혼소스를 넣은 후부터는 언젠가 자신 곁으로 돌아오리라 믿었고 끈기 있게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동호는 연숙을 아내로 맞았다.

 어쩌면 연적이 될 수도 있었던 동출의 딸에게 불미스런 일을 저지른 것이 한 때 질투를 넘어 분노까지 잠시 일으키게 한 현재의 아내 연숙에 대한 복수를 한 것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그동안 일을 덮어주고 결혼해 준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결혼 전에 남자를 안 헌댁으로 소문나면 지가 아무리 부잣집 딸이라 해도 시집이라도 제대로 갈 수 있었을까.` 끝에 가선 그런생각으로 비화시키며 동호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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