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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산동네 <8>
꿈꾸는 산동네 <8>
  • 경남매일
  • 승인 2011.06.2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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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화 악몽 셋째
글 : 임 상 현 / 그림 : 김 언 미

 그러는 사이 민경이가 내려온 토요일 오후였다. 연숙은 모처럼 가족나들이를 가야 하는데 민복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마침 민경에게도 방을 같이 쓰라고 하자 입이 댓 발이나 튀어나왔다. 아무리 친척이라고 해도 둘은 그동안 일면식도 없었던 터였다.

 연숙은 마침 민경이 대학 입학 후 마땅히 입을 옷이 없다고 해 백화점에 가기로 했다. 아이 아버지는 저녁 늦게 들어온다니 별 문제 없지만 병철과 민복을 집에 두고 가자니 신경이 쓰였다. 마침 병철이 친구들과 함께 영화도 보고 저녁까지 먹고 천천히 오겠다며 용돈을 두둑이 챙겨 나가버리자 에라 잘 됐구나 하고는 바로 집을 나설 궁리를 했다.

 "오늘은 저녁까지 먹고 올지도 모르는데 어떡하지 민복아." 연숙은 큰 걱정이라도 되는 표정을 지으며 민복을 바라보며 묻는다.

 "큰어머님 걱정 마세요. 제가 집보고 있을게요." "그럴래? 그럼 이리와 봐." 연숙은 민복을 불러 가스레인지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먹다 남은 식은 밥이 아직 남아 있는 밥솥과 이전에 간식용으로 사둔 라면이 들어있는 싱크대 서랍장을 일러준다. 먹을 것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라는 듯. 그리곤 마음 편히 집을 나섰다.

 "서운해도 어쩌겠어? 딸이 모처럼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너도 이해하지?" "물론 이지예 큰 어머님. 여기는 아무 걱정 마시고 다녀 오이소." 밤이 되자 민복은 내일부터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회사를 혼자서라도 구해봐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면서 라면에다 식은 밥까지 말아가며 후딱 해치웠다.

 연숙과 민경은 백화점에서 쇼핑을 끝내고 꼭대기 층에 있는 레스토랑에 앉아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우아하게 하고 있었다.

 이제 대학에 갓 입학한 민경에겐 호사스런 행보였다. 연숙은 민경이 어릴 때부터 수준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철저히 애써왔다. 옷 하나, 행동 하나, 용돈 등 어느 것 하나 민경에게는 최고를 고집했다.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민경이 그런 부분에 한번도 아쉬움을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거기다 연숙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고, 가장 순수해야 할 남녀 간의 사랑마저 돈만 있으면 얻을 수 있는 존재쯤으로 인식시키려 애썼다. 민경은 은연중 이런 생각들을 흡수하거나 체득하며 성장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가면서 부모와 떨어져 처음으로 독립해 사는 동안 그러한 생각들도 전적으로 옳지만 않다는 것을 민경은 조금씩 느껴가고 있었다. 가난한 고학생을 보면서 연민을 넘어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고, 돈이 없어도 소박한 꿈을 꾸며 행복해 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은연중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쩌면 돈으로 환가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존재는 정작은 돈과 무관하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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