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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산동네 <5>
꿈꾸는 산동네 <5>
  • 경남매일
  • 승인 2011.06.2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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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해고 (2-2)
글 ; 임상현 / 그림 ; 김언미

“맨 처음 사장이 널 해고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땐 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지. 나는 민복이 회사의 여직원들에게 열심히 살다보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 라는 희망을 줄 것이라고 긍정적인 측면을 얘기 했지. 하지만 사장은 그렇게 고운 시선으로만 보는 것 같지 않았어. 오히려 사기를 떨어뜨리고 위화감을 조성할 뿐이라는 눈치였어. 그리고 여직원들이 너나 나나 회사는 생각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겠다고 나서면 어쩌겠냐고 말하는 사장의 억측된 논리에 반감을 느끼면서도 더 이상 대들 수 없었다. 결국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과 고용인의 인식 차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아무튼 공장장님 이렇게 생각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회사를 관두더라도, 아니 어디에 있더라도 공장장님을 절대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제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공장장님도 제 3자의 입장으로 봐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민복아 나는 민복이 네가 어떤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 대충은 짐작이 간다만 아까도 말했다 시피 니가 그 일로 상처를 받을 까 그게 가장 걱정이다. 세상은 아직도 대부분이 가진 사람을 위해 만들어 놓은 법과 잣대가 너무도 많아. 자칫 잘못하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 될 수도 있단 말이다. 나는 니가 어떤 일을 하든 반대는 하지 않겠다. 그만큼 너의 심성과 살아온 성실성을 믿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세상이 불공평하네 썩었네 아무리 소리쳐도 당장에 달라질 수 없는 게 기성사회라는 곳이다. 결국 내말의 요지는 세상이 변화되기 위해선 아직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말이지. 언젠가 이 사회도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불공평의 폭이 거의 없어지는 날도 오겠지.”

공장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 숨을 내쉬었다. 민복은 그 모습에서 다시 한번 공장장의 진심을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자신은 여직원과 관련된 일에 손 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게다가 자신마저 부당해고 당하지 않았는가.

민복은 작업장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며 만감이 교차되는 기분이었다. 여태껏 어떻게 살아온 자신인데 이 정도 일로 무너질 순 없다. 쉽사리 발길을 돌릴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그동안 정들었던 공장 구석구석을 바라보는 기분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다 민복은 갑자기 옥상으로 올라갔다.

정말 마음이 착잡했다. 차라리 이곳에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만사 끝이다. 더 이상 고민도 고통도 없는 세상에서 훨훨 날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공장 신축현장에서 떨어져 돌아가셨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떨어져 죽은 가족으론 아버지 한 명으로도 족하다. 민복은 옥상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다. 갑자기 환상처럼 자신이 앉아있는 눈 앞으로 꽃이 보였다. 눈을 비볐다. 환상은 아니었다. 근데 이 콘크리트 옥상에서 꽃이 어떻게 자란다고.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하지만 분명히 꽃이었다. 그것도 노란 민들레가 옥상에 쌓여있는 흙먼지위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느 꽃보다도 생명이 질기고 잡초 같은 민들레. 갑자기 민복의 시야에 지나간 시절이 떠오르며 뿌옇게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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