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 상 현 / 그림 : 김 언 미
"사모님예 사모님은 제가 신랑도 없이 한 집안을 이끌어가는 가장인 줄은 알지예." 한참 만에 양례가 한 말은 고작 그것이었다. 집 없는 약자가 집 가진 강자에게 고작 할 수 있는 항변은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고 매달리는 일밖에 더 있겠는가, 양례는 자신의 처지가 스스로도 가련했다.
"알지예. 예 잘 알고 말고예." "알고 있다면 사정을 좀 봐주면 안되겠습니꺼? 사모님은 이제 자제들도 다 성장했고 돈도 벌어오고 해 크게 돈 들어갈 일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더."
양례는 자신이 세 들어 있는 건물 안쪽 골목 외에도 사람들이 나다니는 앞쪽으로 점포가 2개에다 그 앞쪽 난전까지 자릿세를 챙겨가는 주인네가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을 건데 도대체 왜 가게에 욕심을 내는지 속내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혹시 자릿세를 올리려는 수작이 아닐까. 장사가 잘 되는 지금 자릿세 올리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가겟세 올려달라고 그럽니꺼? 그 일 때문이라면 미리 상의하지 그랬었예? 저도 감수 하겠습니더." "이 아줌마가 자꾸 좋게 얘기 할라 카니 말을 못 알아 묵네. 그냥 비워달라면 비워주소. 내 구질구질한 말을 꼭 입 밖으로 내 뱉어야 마 속이 시원 하겠는교?" "도대체 이유가 뭡니꺼? 저도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이유나 알고서야 물러나든지 뭐든지 할거 아닙니꺼?"
급기야는 두 사람 사이에 고성이 오갔고 잠시 긴장 속에 고요가 왔다. 바로 그 때 안방에서 킁 하는 주인 영감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죽은 뒤로 무슨 건수나 없을 까 자신의 주변으로 주책 스럽게 빙빙 돌던 영감이었다. 평상시 그렇게 살갑게 굴던 영감도 막상 이런 일이 벌어지자 자신의 일과 전여 무관한 양 아예 숨어 버렸다.
"일단 다음 달 가겟세 낼 때 까지는 자리를 어쨌든 비워주소. 내가 뭘하든 그건 당신네가 알 필요는 없고."
주인여자가 험한 인상까지 쓰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앉은 자리에서 돌아앉았다.
양례는 자릿세 때문이 아니란 걸 알자 더 이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물러나는 일이 수 일 것 같다. 다음 달 자릿세 까지라면 아직 20일 정도의 여유가 있다. 주인 아줌마가 저렇게 막무가내면 주인영감에게라도 뭐 때문에 그러는지 알아내어 대책을 세우리라. 양례는 앉은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하도 신경을 쓴 탓인지 갑자기 어지름 증이 찾아와 이마를 짚어가며 밖으로 나왔다.
난전에는 하나 둘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밤이 되어 파장이 되어가는 시장통의 한 쪽에서 어떤 노파가 떡다라이를 펼쳐놓고 띄엄띄엄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물건을 사달라며 소리치고 있었다. 양례는 자신의 옛 시절이 떠오르고 가련해 보여 할머니에게 다가가 떡을 샀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난전의 세계로 다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예감이 차츰 자리를 잡자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