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4:29 (금)
꿈꾸는 산동네 <2>
꿈꾸는 산동네 <2>
  • 임상현
  • 승인 2011.06.20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 1화 양례의 불안한 행복(2)
▲ 그림 ㅣ 김언미
“어소 오소.”

양례가 가게 2층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인여자가 평소에 잘 안쓰던 경어까지 써가며 앉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이쪽으로 앉으소.”

주인여자가 방석까지 건넨다.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양례는 자리가 왠지 편하지 않고 부담스럽다.

“요즘 가게에 손님이 많아 정신 없지예?”

“예.”

“잠깐만 여기 있어소. 내 커피라도 타가지고 올께요.”

“아입니더. 마 괜찮습니더. 근데 지를 와 불렀지예? 가겟세도 꼬박꼬박 잘 내고 있는데.”

“마 가겟세야 민복이 어무이가 어련히 잘 내고 있는 거 잘 압니더. 근데 내도 이 말 꺼내기가 영 부담스러바서 이거야 원.”

주인집 여자가 평소답지 않게 행동하는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물론 연배라 그랬겠지만 평소 같으면 반말은 기본이고 농담도 잘 걸어 왔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하는 행동들이 영 부자연스럽다.

“지금 그 가게 6개월 전 서울로 이사 간 동석이네가 십년 이상 잘 해왔고 민복이네도 이어받아 잘 해와 한번도 가겟세도 밀린 일이 없고해서 내도 항상 고맙게 생각해왔습니더. 그런데 이말 할라 카이 정말 입이 안 떨어져서 이거야 원.”

“도대체 와 그러는 데예? 뭐 문제라도 있습니꺼?”

양례는 여자가 그렇게 말하자 물으면서도 간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다. 예상보다 심각한 뭔가가 불안한 예감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흐지부지 쉽게 양보할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가게라도 내어 놓으라면 어떻게 하나 역시 그 문제가 가장 신경이 쓰인다. 이런 일이 벌어 졌을 때 자신이 알고 있기에 주인에게 항변할 방법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촌에 있을 때 소작 일을 할 때도 그랬다. 주인이 이제 그만 붙이라면 물러나는 일 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그게 다 가진 사람의 횡포요 못 가진 사람의 설움이 아니겠는가.

“근데 일이 좀 생겨 그만 가게를 비어 줘야 겠습니더.”

“예! 뭐라꼬예?”

양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들어서는 안될 충격적인 말이 주인여자에게서 결국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가게를 비워줘야 겠다고예?”

“…….”

양례는 주인여자로부터 가게를 비워야 한다는 말을 확실하게 듣고 나자 결국 우려했던 일이 왔구나 하는 충격으로 하마터면 앉은 자리에서 뒤로 나자빠질뻔 했다. 순간 앞이 캄캄 했다. 전 가족의 생존권이 달려있고 민복에게 이제 공장은 그만두고 공부만 해라고 막 말하려던 시점에 벌어진 기막힌 현실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양례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내도 민복이네 사정은 잘 압니더. 그래도 우짜겠습니꺼? 내도 말못할 사정이 있다는 거.”

“…….”

양례는 사정을 얘기하고 하다못해 주인아줌마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져도 시원치 않을 판에 그 순간 숨이 턱 막히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