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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女優' 엘리자베스 테일러 타계
`세기의 女優' 엘리자베스 테일러 타계
  • 경남매일
  • 승인 2011.03.2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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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의 여우(女優)'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할리우드 은막의 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세상을 떠났다. 항년 79세.

   테일러의 대변인인 샐리 모리슨은 2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리즈(엘리자베스의 애칭) 테일러가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모리슨은 "고인이 LA의 시더-시나이 병원에서 오늘 평화롭게 숨졌다"면서 "그녀의 모든 자녀들이 임종을 지켰다"고 밝혔다.

   그는 "고인이 최근 여러 합병증으로 고생해 왔지만 상태가 안정적이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테일러는 지난 2004년부터 앓아온 울혈성 심부전증 증상으로 지난달 이 병원에 입원해 그동안 6주가량 치료를 받아왔다. 1997년 뇌종양 제거 수술과 2009년 심장판막 수술을 받기도 했다.

   테일러는 1960년 `버터필드8'과 1966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두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인도주의적 활동으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테일러의 사생활은 파란만장했다. 지금까지 영국 배우 리처드 버튼과의 두 번의 결혼을 비롯해 7명의 남자와 여덟 차례나 결혼하는 등 결혼과 이혼을 거듭했다.

   고인은 생전인 지난 1989년 한 인터뷰에서 "너무 많은 것이 내 인생에서 벌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1932년 영국 런던에서 미술품 중개상 아버지와 연극배우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테일러는 10세 때 영화 `귀로'를 통해 데뷔한 뒤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클레오파트라'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관능적인 모습과 큰 눈망울, 아이콘과 같았던 짙은 속눈썹은 전세계 많은 남성과 영화팬을 사로잡았다.

   테일러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유명한 역할의 하나는 클레오파트라였다. 거기에서 자신과 두번 결혼한 버튼을 만나기도 했다. 클레오파트라는 테일러가 영화 출연료로 100만달러의 벽을 깬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말년에는 `엘리자베스 에이즈 재단'을 설립해 에이즈 퇴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 왔다.

   테일러는 자신이 `팝의 황제'라는 칭호를 1989년 처음 붙여줬던 마이클 잭슨과도 오랫동안 가까이 지냈고, 2009년 잭슨이 사망했을 당시 추도사를 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고인은 연기와 연예분야에 대한 공로와 에이즈 퇴치를 위한 활동 등으로 2000년 버킹엄궁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데임' 작위를 받았다.

   테일러는 세계적인 명성에도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다. 그는 마이클 잭슨과 함께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려다 지병 때문에 방한하지 못했고 1999년에도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공연에 특별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내한 일정이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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