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8:02 (금)
죽은 공명, 산 중달을 이기다
죽은 공명, 산 중달을 이기다
  • 허균 기자
  • 승인 2011.01.26 14: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허균 정경부장.
 어린 시절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장원의 결투’를 기억한다.

 죽은 공명이 살아있는 중달을 물리치는 대목이다.

 생의 마감을 목전에 둔 공명은 오장원에서 위나라를 진두지휘하는 세기의 라이벌 중달과 숙명의 전투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전투가 일어나기 전 공명은 생을 마감하게 되고 이를 틈탄 중달은 위군을 이끌고 촉군의 진영을 유린하지만 살아있는 듯 꾸민 공명을 보고 줄행랑을 치게 된다.

 이를 본 세인들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쳤다라며 제꾀에 속은 중달의 어리석음을 놀렸다.

 최근 김해에서 오장원의 전투가 생각나게 하는 사안이 발생했었다.

 노후방범차량 교체구입비 예산 삭감으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김해 해병전우회와 김해시의회 조성윤 의원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조 의원은 지난해 12월8일 총무과 소관 질의답변에서 김해 해병전우회가 방범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해병전우회에 대한 시비 지원은 불가하다고 밝혔고 이 때문인지 해병전우회에 지급돼야 할 노후차량 교체구입비는 삭감됐다.

 이에 발끈한 해병전우회 관계자들은 시의회를 항의 방문했고 당시 조 의원과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김해 해병전우들은 자신들에게 당연히 올 줄 알았던 예산이 삭감된 것에 발끈한 것이 아니었다.

 김해 해병들의 속을 긁은 것은 조 의원이 예산을 심의하면서 내 뱉은 해병전우회에 대한 폄훼발언.

 당시 회의 속기록에서 조 의원은 “김해 해병전우회가 방범활동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차량만 교체해달라고 한다”고 했고 이를 확인한 해병들은 “조 의원이 해병전우회 전체를 욕보인다”며 조 의원의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1차 만남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해병들은 조 의원에게 항의서한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해병들은 지난해 말 조 의원에게 보낸 항의서한에서 “시의회 회의록에서 조 의원이 ‘해병전우회가 방범근무를 하지 않는데 차량지원은 해 줄 필요가 없다’고 발언한 것을 확인했다”며 “조 의원이 해병전우회가 방범근무를 하는 지 확인했다고 했지만 조 의원은 김해시 관내 해병지회가 몇 군데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으며 순찰과 관련해 확인을 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해병들은 이와 관련해 조 의원이 1월6일까지 해병전우회에 공개사과를 하지 않으면 기자회견은 물론, 진상규명 촉구결의대회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항의서한을 전해 받은 조 의원은 “시의원이 시민사회단체에 지급되는 예산을 심의하는 것은 당연한 의정활동인데 단체가 예산을 삭감한다해서 시의회를 항의방문하거나 시의원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못 박으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배정환 시의회 의장은 해결점을 찾기 위해 이들의 만남을 주선했고 지난 10일 의장실에서 마주 할 수 있었다.

 많은 말들이 오고갔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날 회동은 비공개로 진행됐기에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지만 이 후 김해 해병전우회의 기자회견이나 조 의원에 대한 결의대회와 관련된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날 회동 이후 장세호 김해 해병전우회장은 “삭감된 차량 지원비를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땅에 떨어진 해병전우회의 사기를 살리고 명예를 찾기 위해 조 의원의 사과가 필요했다”고 했고 조성윤 의원은 “공개적으로 사과는 하지 않았다. 삭감된 해병전우회 차량지원 예산은 나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에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다. 단지 봉사활동을 정확히 하는 단체에는 시비 지원을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단체에 시비가 지원되지는 않을 것”이라고만 했다.

 과연 조 의원은 이날 김해 해병들에게 사과를 했을까. 아니 해병들은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사과를 조 의원에게 받아 냈을까.

 이날 만남을 주선한 배정환 시의회 의장에게 조 의원의 사과와 관련해 물었더니 배 의장은 “조 의원이 해병에게 ‘죄송하다’ 등의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대충 분위가 그랬다”며 말끝을 흐렸다.

 현역에서 은퇴한 김해 해병전우회와 살아있는 지역권력(?) 시의회 의원의 이번 갈등 스토리를 지켜보며 삼국지에 나오는 오장원의 전투가 머리에 스치는 것은 필자만의 독단적인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