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소망을 마음에 담으면서 입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복 많이 받으시라’고 하지만 왠지 예년보다 마음이 불편하다. 작년 우리나라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피폭사건으로 야기된 일촉즉발로 6ㆍ25이후 최악의 전쟁 위기를 맛보았다. 전쟁 공포와 함께 북한에서는 온갖 저주를 말하는 걸 서슴지 않았다. 민주당 천정배 최고위원의 막말에 한 시민이 내란죄로 고발해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발언 자체를 두고 내란죄을 운운하는 것도 우습거니와 전 정권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난 사람의 입에서 정제되지 못한 말이 거침없이 나왔다는 것도 실망스럽다. 아무리 현 정권이 미워도 이런 험악한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서민들은 팍팍한 생활의 주름이 펴질 것 같지 않고, 미래조차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웃으면 덕담을 전한다. 현실은 힘들지만 새해를 맞아 또 희망을 품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말은 입에서 나와 복과 저주의 옷을 입는다. 그리고 말의 상처가 행동에 입은 상처보다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국회의사당은 여야가 대립하면서 발전적인 대안을 만드는 곳이다. 작년 국회에서 전혀 국민들에게 향기로운 소리를 전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여야가 멱살잡이하는 건 기본이고 온갖 폭력이 난무하고 저주들이 들끓었다. 여여의원들의 욕지거리가 바로 생중계되는 곳을 민의의 전당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부끄러웠다.
말은 절제의 미학이다. 아무리 상대를 미워해도 마음 밑에 연민이 남아 있으면 막말로 표출되지 않는다. 여야가 아무리 상대가 꼴사나워도 상생의 파트너로 인정한다면 저주의 말이 나올 수 없다. 의견이 달라 고성은 오갈 수 있지만 저주를 퍼붓는 것은 아예 실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깡다구다.
우리 민족이 새해에 덕담을 주고받으며 이웃에 정을 전하고, 아무리 미운 사람에게도 덕담을 던져 상대에게 복을 빌어줬던 넓은 마음이 우리 정치인들에게 필요하다. 막말을 던지고 나면 아예 상대의 존재가 사라진다. 그러면 정치는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