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1:49 (금)
사천에 가고 싶다
사천에 가고 싶다
  • 박명권 기자
  • 승인 2010.12.23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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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항공우주와 과거 문화가 공존

■ 명소 - 항공우주박물관ㆍ봉명산 다솔사ㆍ선진리성과 조명군총ㆍ비토섬

항공박물관 현장학습장 가족 관광코스로
별주부전 전설 잉태 비토섬 자연생태체험

 사천은 항공우주산업과 해양관광이 공존하는 고장이다.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 역사와 문화가 숨쉰다.
 

▲ 사천 항공우주박물관은 전국의 유일한 항공우주박물관이다. 항공우주관, 자유수호관 등 실내전시장과 야외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 항공우주박물관
 사천 항공우주박물관은 6ㆍ25전쟁과 국가안보에 대한 역사관을 갖게 하고 21세기 첨단항공우주산업의 기술과 비전을 제시하는 등 사회공공교육에 이바지하기 위해 4만 6천여㎡의 부지에 2002년 8월 29일 완공된 항공우주박물관은 자유수호관과 항공우주관, 그리고 각종 항공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야외전시장으로 구성돼 있다.
 사천지역이 항공 우주산업의 메카로 부상하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이곳에 항공기에 관한 제반사항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배우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어 학생들의 현장 학습장으로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전국의 관광객들이 가족과 단체 관광코스로도 유명하다.
 자유수호관에는 한국전쟁의 역사와 참전국 총기류, 북한김일성 승용차, 북한군 오토바이, 중공군전시품, 한국전쟁의 각종 활약상 조명, 유엔참전국 코너 등이 있다.
 항공우주관에는 항공발달사, 항공기의 분류, 비행기의 원리, 기구와 비행선, 인공위성의 비행기 원리, 인공위성의 종류와 기능, 국내 인공위성 개발현황, 로켓의 구조와 원리, 항공기 제작산업 등 의 코너가 있다.
 야외전시장에는 한국전쟁 참전 항공기 및 전차, 화포,  북한군 주력전차T-34, 미국 및 영국의 참전 전차, 국산1호 부활호, KAI생산항공기 T-50등이 전시돼 있다.

 

 ◇ 봉명산 다솔사
 봉명산 다솔사는 많은 군사(백성)를 거느린다는 뜻으로 신라 지증왕 4년(503년)에 범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역사 깊은 고찰로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사찰 제23호로 등록된 사찰이다.
 이 사찰은 임진왜란 당시 불타 숙종 때 중건했으나, 다시금 1914년 화재로 대양루를 제외한 건물 들이 소실되어 이듬해 다시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대양루와 극락전, 웅진전, 적멸보궁, 요사체 등 10여동이 현존하고 있다.
 이중 대양루는 영조 34년인 1758년에 재건된 후 지금까지 보존돼 있는 2층 맞배지붕에 주심포양식으로 268㎡의 구묘가 큰 건축물이며, 197
8년 2월 대웅전 수리시 불상 뒤에 모시는 그림 속에서 108개의 사리가 발견되어 세상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또한 다솔사는 일제강점기에 만해 한용운 선생이 수도하던 곳으로 만당을 조직해 항일운동을 펼쳤으며,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머물면서 만해와 백형 효당의 소신공양 이야기를 듣고 불교소설인 등신불을 집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 선진리성과 조명군총

 선진리성은 임진왜란 당시 성을 중심으로 바다와 육지에서 두 차례의 큰 싸움이 있었던 곳이다.
 해전으로서는 선조 25년 1592년 5월 29일 함선 23척을 이끌고 여수본영을 떠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선진앞바다에 이르러 거북선을 앞세워 왜적과 치열한 싸움 끝에 13척의 왜선을 모조리 쳐부수는 전과를 올린 사천해전으로 거북선을 최초로 등장하여 싸운 유래 깊은 곳이다.
 특히 봄이면 1천여그루의 벚꽃이 만개해 은백색 장관을 이루는 국내 최대의 벚꽃 군락지이기도하다.
 조명군총은 선조 30년 1597년 1월 정유재란 당시 선진리성에 포진하고 있던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조ㆍ명연합군이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가 산화한 희생자의 넋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무덤의 형태는 사방 20칸 35m의 방형분묘(네모반듯한 무덤)로서 흔히 당병무덤이라고도 한다.
 해방 전까지는 무덤위에 당병공양탑(唐兵供養塔)이라 쓰인 1m가랑의 표석이 있었으나, 해방 후에 없어졌다.
 그러나 이 무덤은 400여 년 동안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잘 보존되어 왔다.
 사천시와 사천문화원에서는 매년 10월 1일 이곳에서 희생자의 넋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 비토섬
 비토섬에는 월등도, 토끼섬, 거북섬, 목섬이 있고 이는 토끼와 거북이 용왕이 등장하는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육지와 바다사이에 두 번씩 나타났다가 사라졌다하는 판이한 두 세계의 중간에 있는 갯벌은 육상과 해상의 생태계 완충작용과 연안 생태계 유지물로서 훌륭하게 보존돼 자연생태 체험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 조명군총은 선조 30년 1597년 1월 정유재란 당시 선진리성에 포진하고 있던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조. 명연합군이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가 산화한 희생자의 넋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문화유적탐방

 

 사천의 관광자원중에 문화적인 가치가 높고 역사적인 유적들을 선택해 구성했으며 소요기간은 1박2일 코스다.
 구계서원 → 사천향교 → 사천읍성 → 항공우주박물관 → 조명군총 → 선진리성 → 매향암각화 → 신벽지석묘 → 백천사 →덕곡지석묘 → 사천읍 숙박 → 가산석장승(가산오광대 전수관) → 매향비 → 환덕조씨고가 → 곤양향교 → 비자나무 →다솔사(대양루, 응진전) → 보안암석굴 → 세종, 단종태실지   

 조명군총은 선조 30년 1597년 1월 정유재란 당시 선진리성에 포진하고 있던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조. 명연합군이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가 산화한 희생자의 넋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테마탐방

 

 박재삼문학관

 소재지  : 서금동 101-61(노산공원내)
 위치  : 사천IC에서 삼천포항방향 22km
 문의처 : (055)832-4953
 홈페이지 : http://www.parkjaesam.com

 박재삼은 다른 어떤 시인보다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는 시를 썼고, 말소리와 말뜻을 조화시킨 오묘한 운율을 만들어 서민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리고 광복과 한국전쟁기간동안 우리 겨레 대부분이 경험해야했던 경제적 빈곤을 뼈저리게 겪으면서 일상적인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누구나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는 시를 지었다.
 또한 그 나름의 인생관으로 삶의 괴로움을 극복하는 시를 꾸준히 써 왔기에 그의 작품속에는 그만의 독특하고 깊은 시 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 세계는 15권의 시집과 10권의 수필집 속에 잘 반영되어 있다. 우리 고장이 낳은 한국의 서정시인 박재삼은 고혈압과 심부전증으로 고생하다 1997년 6월 8일 작고했다. 그를 사랑하던 문학인이나 고향의 후배 문인들이 뜻을 모아 돌아가신 1주기인 1998년 6월 8일 박재삼 추모 문학제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문학제를 열고 있다.

  

풍광에 빠져 낭만과 추억 만끽

■명소 - 남일대해수욕장과 코끼리바위·창선 삼천포대교·유람선 관광

 사천은 낭만과 추억 속에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남일대 해수욕장과 코끼리바위= 신라 말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곳을 지나다가 경치에 반해 남쪽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갖고 있는 곳이라고 명명하기 시작한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고 있다.

이곳은 백사장이 다른 해수욕장과는 달리 조개껍질이 부서져 된 조개껍질 모래로서 옛 부터 인근 부녀자들이 모래찜질을 하던 휴양지로 유명했다.

또한 동쪽 해안 산책로를 따라 나가면 바닷가에 마치 커다란 코끼리가 코를 늘어뜨리고 서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사천 8경의 하나인 코끼리바위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코끼리바위의 코 사이를 지나려면 물때가 맞아 간만의 차이가 심한 한시에만 지날 수 있는데 이 바위를 지나면 모든 소원을 이룬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쪽으로는 현수교를 지나 해안 테크를 따라 산책하면 진널전망대가 있다. 이 전망대에서는 삼천포항구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인근에는 축구장과 농구장이 있으며, 남일대 리조트의 해수탕과 호텔이 있어 휴양지로 일품이며, 매년 7월말과 8월초에는 해변축제와 바다영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창선·삼천포대교= 사천시와 남해군을 연결하는 5개의 교량이 총길이 3.4㎞로 지난 1995년 2월에 착공해 2003년 4월28일 개통되어 2006년 7월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대상에 선정된 교량으로 제 각각 모양과 공법이 다르게 건설되어 교량전시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삼천포항에서 시작되는 첫 번째 교량이 삼천포대교다.

삼천포대교는 사천시의 대방동과 모개 섬을 잇는 사장교로 길이가 436m로 연륙교 중 교량의 길이가 가장 길고 웅장한 모습이 돋보인다.

두 번째는 모개 섬과 초양 섬을 잇는 초양대교는 스틸아치교로 길이가 202m이며, 붉은색의 중로식(스틸아치)공법으로 만들어졌다.

세 번째는 초양 섬과 늑도를 잇는 늑도대교는 340m의 상자 형 교량으로 단아하면서도 미끈하게 뻗은 모습이 장관이다.

넷 번째는 늑도와 창선도를 잇는 창선대교는 340m의 스틸아치교로 붉은색 3단 아치는 갈매기가 바다를 나는 형상이다.

다섯 번째 단항 교는 창선도 하부에서 육지 상부로 연결되는 유일하게 육로 교량이다.

특히 야간에는 화려한 연출조명으로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화려한 밤바다의 진풍경이 펼쳐지고 교량위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실안낙조는 장관을 이루며, 봄이면 초양도의 유채꽃은 삼천포대교와 초양대교의 배경으로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이다.

 

▲ 삼천포 유람선은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 사이의 뱃길을 따라 유람한다. 사진은 1천명을 동시에 승선 할 수 있는 한려수도호.
◇유람선 관광=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 사이의 뱃길을 따라 유람하는 삼천포 유람선은 대형 크루즈형으로 1천명을 동시에 승선 할 수 있는 한려수도호와 700명 승선, 훼미리호가 웅장함을 과시하고 있다.

바다의 낭만과 환상적인 진풍경으로 계절별 라이브 공연을 펼치고 있어 관광객들이 환상에 젖어 들기도 한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켜 바다 위를 누비며 갈매기 소리와 함께 친구와 여인, 사랑하는 가족과 바다의 낭만에서 흠뻑 젖어 추억을 남기기엔 최상의 장소다.

 ● 우리지역 맛집

싱싱하고 다양한 활어

 사천에는 청정해역에서 잡아온 싱싱하고 다양한 활어의 횟감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그냥 지나치기에 너무 힘들다.

 

 

 

● 지역 자랑

▲ 사천시청 문화담당 계장 신현경

선진리성 고려초 남도수군 12조창중 하나
정유재란 때 왜장 모라길이 성 구축 기록

 우리 사천시의 자랑거리는 너무나도 많다. 매년 수 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선진리성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 상세히 알리고 싶다.
 사천 선진리성은 지난 1998년 9월 8일 문화재자료 제274호로 지정 됐으며, 사천읍에서 서남쪽 약 7㎞지점,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사천만의 동안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구릉의 지형을 이용하여 구축한 평산 성식의 토 축으로 된 창성이다.
 이 창성은 본래 서ㆍ남북의 삼면이 바다에 임하고 동쪽 일면만 육지로 통하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수륙요새였다.
 그러나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인해 남북의 이면은 모두 농경지로 변하고 서쪽 일면만 바다로 연해 있으며, 성지(城址)는 모두 밭으로 개간돼 고지일부만 공원으로 조성돼 있으며, 오늘날 이 성은 왜성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는 정유재란 때 왜군이 사천지역을 장악한 후 이곳을 중요거점으로 삼기 위해 당시 왜장이었던 모리길 성으로 하여금 성을 구축했다는 일본 측 기록으로 도진가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성에 관한 우리의 관계문헌이 많이 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고적을 고찰해 보면 결코 왜성이 아니라는 확증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이 성이 위치한 지명을 살펴보면 고려초 남도수군에 설치한 12조창 중의 하나인 통양창이 자리한 곳을 조창이 설치될 무렵 이 곳의 지명을 통양포 또는 통조포라 했다. 이어 조선초기에는 통양포가 다시 통조포로 변했는데 조창명도 이에 따라 통양창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 사천현조에 의하면, 태종 3년(1403)의 일로서 이후 통양창은 왜구의 빈번한 침입으로 조운이 폐지되고 조세운송은 육로로 전환됐다.
 임진란 이후 선조실록에는 이곳의 지명을 법질도, 선창, 신채, 동양 그리고 동양창 따위로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동양과 동양은 전사과정에서 음운상과 통양과 통양의 오사로 여겨진다. 그리고 신채라 함은 사천 고성과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으로 나무 울로 된 왜채를 뜻한다.
 조선 후기에는 수군의 진보인 전선소가 설치돼 선진 또는 선소라 했고, 구한말 때는 화계라 불렀으나 1914년 행정구역 병합에 따라 연포동, 통양동 일부를 편입시켜 오늘의 선진리가 됐고, 성의 이름도 선진리성이 된 것이다.
 선진리성은 일제 때 일제당국에 의해 임진란 시 일본군의 전승지라 해 관심을 끈 바 있고, 1936년 5월에는 이 성지를 고적 제81호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그 후 1963년 1월 21일자로 사적 제50호로 지정되었으나, 왜성이라는 이유로 다시 1998년 9월 8일자로 지방문화재자료 제274호로 지정됐다. 무술전투당시 왜장 이었던 도진의 홍의 후예들이 1918년경 이 성터의 일부를 매수 또는 기부 받아 공원으로 조성하고, 공원 정상에다 사천신채첩지비(泗川新寨捷之碑)라 새긴 비석을 세웠으며, 때때로 일군 장성들이 그들 조선의 전적지라 해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비석은 해방되던 그해 주민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다만 그때 심은 벚나무 천 여 주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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