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5:07 (수)
천주교의 변화
천주교의 변화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0.12.16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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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가 내부분열을 겪고 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지난 3월 주교회의 춘계회의에서 내놓은 성명을 시작으로 지난8일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의 발언, 1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성명, 13일 진보적 원로사제 25명의 기자회견으로 천주교가 흔들리고 있다.

 사태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교회의에서 채택한 ‘4대강사업이 전국의 자연환경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히 우려된다’ 는 성명이 4대강 반대가 천주교의 공식입장인 것처럼 비쳐지고 신자들이 혼란을 일으키자 추기경이 수습에 나선 것이 도화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며 신자들도 찬반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북한은 진리를 차단하고 자유가 없다’는 취지의 추기경 발언에 정의구현사제단이 ‘추기경은 주교회의의 분별력을 경시하고 판단행위마저 부정했다. 골수 반공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으니 교회의 불행’이라는 강도 높은 비판 성명을 내놓은 것.

 여기다 원로사제들이 ‘추기경이 주교단 전체의 결론에 위배되는 해석으로 사회적 혼란과 교회의 분열을 일으킨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용퇴를 결단해야 한다’는 기자회견으로 사태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이에앞서 강우일 주교는 ‘천주교 사제와 신자라면 교회의 가르침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는 미사강론을 하기도 했다.

 천주교 내부적으로는 ‘주교회의의 결정을 추기경이 달리 해석할 수 있느냐’와 ‘주교회의의 결정이 신앙문제가 아니라도 신자와 사제에 대해 구속력이 있느냐’는 것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 같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시각은 다르다.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 이전에 천주교의 내부분열이 시사하는 의미는 따로 있다.

 우선 교황을 정점으로 한 엄격한 위계질서가 근간인 천주교에서 하위 성직자가 추기경을 비판, 그것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는 점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서도 약하나마 비판 목소리를 낸 바 있는 천주교로서는 공개적이고도 용퇴를 촉구하는 정도의 강도높은 비판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천주교 성직자 사회가 이 정도까지 변화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천주교는 유물론을 근간으로 하는 공산주의를 철저히 부정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천주교가 공산주의를 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느껴진다. 물론 정의구현사제단이 유물론이나 공산주의를 인정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또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공산주의와 오늘날의 공산주의는 다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사태에서 천주교와 공산주의 사이에 변화된 관계가 느껴지는 것은 확실하다. 일반국민들로서는 혼란이 올 수도 있는 대목이다.

 또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권위의 실종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면서 우리사회 마지막 어른이 돌아가셨다는 말도 있었지만 많은 국민들은 누군가가 그 권위를 메워주기를 기대했고, 정진석 추기경도 그 중 한분이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권위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서 만들어 나가는 것도 아니다. 정 추기경이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권위와 무게를 갖출 시간도 시대적 상황도 없었지만 천주교내부에서 부터 일찌감치 그 가능성을 부정해 버렸다는 점이다. 천주교는 물론 우리나라 전체로서도 매우 큰 손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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