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2:37 (목)
`완장`이 설치는 서글픈 현실
`완장`이 설치는 서글픈 현실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0.12.12 22: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재근 이사/취재본부장
 현장에 가면 다 있다. 문제도 거기에 있고 해결책도 거기에 있다. 만나야 할 사람도 알아야 할 사람도 그곳에 가면 다 있다.

 현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정책의 시작은 현장을 확인하는데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원들과 대화나 토론을 하면서 제일 많이 했던 말 중의 하나가 현장에 가보라는 것이다. 김두관 경남지사도 이를 학습한 듯 취임 후 첫 화두가 현장에 답이 있다고 했다. 지금 경남의 현장에는 답이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경남도가 출자 출연한 기관장에 대한 사퇴압박은 분란만 일게 만드는 등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사 특보가 나서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후 본청 국장에 이어 감사관까지 동원됐으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 아닌가.

 모양을 갖춘 후 출구를 열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실 꾸러미는 첫 매듭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헝클려 다 버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꼭 그 짝이다. 경남지사 특보란 직책이 마치 완장을 찬 것으로 착각했다면 난센스다. 전화 한 통으로 출자출연기관장을 찾아 사퇴를 종용한 것도 잘못됐다.

 더욱이 사퇴 전, 경남지사와의 면담요청마저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회한이 화를 돋운 꼴이다. 김 지사는 출자출연기관장에게 사퇴를 종용한 사실과 관련,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추후에 보고 받았다"며 "특보와 사전협의는 안했지만, 도지사의 뜻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분란만 일게 한 특보라지만 힘을 보태줬다. 하지만 진정 실세라면 더욱 진중했어야 한다.

 모 언론이 임근재 특보를 두고 저승사자로 칭했다면 조용한 일처리를 요구한 지적일 게다. 특보의 행동이 분란``을 자초한 후 감사관까지 동원됐다는 것은 도정운영이 어떠한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 아닌가.

 특히 비리를 캐 쫓아내겠다는 발상이었다면 정말 한심하다. 저승사자도 해결하지 못한 일을 A국장, B국장 등이 나서는 동안 경남도정은 모래성으로 변하는 조짐마저 보였다. 완장은 완력이다.

 힘만 앞세우는 완력으로는 무엇 하나 얻기 어렵다. 출자출연기관장은 용퇴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사퇴를 종요당한 당사자도 지금 나가면 마치 잘못해서 쫓겨나는 것처럼 비쳐진다.

 지사가 직접 나서서 기관장을 설득하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으냐는 것이다. 못 먹는 호박 콕콕 찌르듯 이사람, 저 사람이 나서 화를 돋우면 분란만 자초할 뿐이다. 소통이란 물이 아래로 흐리지 않는 것도 문제다. 보좌진들의 역량부족을 탓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책임은 지사 몫이다.

 산하 기관장에 대한 사퇴 압력은 김두관 지사가 취임하기 전에도 있었다. 김 지사는 취임을 앞둔 6월 29일 "(물러나는) 김태호 지사가 임명한 출자ㆍ출연기관의 장(長)은 사표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는 원칙적으로 맞다.

 하지만 MB정권 초기 때 전 정권이 임용한 기관장을 몰아낼 당시 한 발언을 쏙 빼닮았다. 상대를 비난하면서 닮기도 한다지만 닮아도 너무 닮았다. 물론 코드인사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선거 후 논공행상은 한국에 비해 훨씬 노골적이다. 오바마의 하버드 로스쿨 친구들, 고향 시카고 친구들의 이름을 백악관, 정부 기관, 각국 대사 등의 명단에서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처럼 선거 공신들끼리의 다툼 같은 볼썽사나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논공행상을 하더라도 적재적소라는 인사의 기본 원칙을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성을 빙자한 코드인사는 화를 자초할 것이다. 특히 김두관 지사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란 고사를 인용, 잘못된 채용 절차와 내용은 고쳐 나가겠다고 했다. 서울사무소장 등의 채용특혜논란, 출자출연기관장 사퇴파동이 이에 속한다.

 하지만 스스로가 한 말의 포로가 될까봐 걱정이다. 쇄신을 통한 도민의 결집효과(Rally around the flag effect)를 기대하며 완장 하나 걸쳤다고 으스대는 꼴, 이젠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들 내 팔뚝에 완장 찼다고 자랑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