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9:18 (금)
가을에 듣는 세 가지 소리
가을에 듣는 세 가지 소리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0.10.2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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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소리에 민감하다. 가을은 기온이 떨어지면 색깔을 입고 오지만 소리로도 전해온다. 정철과 유성룡과 이항복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뭔지를 두고 고담준론을 나눴는데 알고 보면 우스갯소리다.

 가사문학의 대가인 정철은 이 세상 최고의 소리는 가을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 산에 걸려서 난다고 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등용했던 서애 유성룡은 목이 컬컬해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킬 때 나는 소리라 응수했다.

 임진왜란 때 선조의 신임을 얻어 1등 호성공신이 된 백사 이항복은 옆방에서 들여오는 여인네의 옷고름 푸는 소리라 은근슬쩍 찔렀다.

 가을이 정점에 있다. 단풍의 오색 향연이 더없이 정겹고 누구나 나가서 그들의 채색옷을 벗기고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단풍의 자태를 감상하는 호사야 누구나 누릴 수 있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소리를 가슴에 담는 것은 마음이 숙연해야 가능하다.

 먼저 이항복이 추천한 여인의 옷고름 푸는 소리는 ‘몸’으로 들을 수 있다. 인간이 욕심을 따라 듣는 소리는 치열한 삶 가운데 차고 넘친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우리 귓전에 맴돌아 욕심이 안에서 잉태하기 시작하면 온 몸이 이 소리의 지배를 받는다. 육신의 소리에 머물고 있으면 그 이외의 아름다운 소리는 들려올 수 없다.

 인사 청문회에서 오갔던 소리는 품격이 없는 독설이었다. 정치는 가족과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데, 거침없는 청문회 말 때문에 많은 후보와 그 가족이 상처를 입었다. 배려가 없는 사회와 국가는 아주 초보적인 소리를 듣는 단계다.

 유성룡이 천거한 막걸리 마시는 소리는 마음과 마음이 화답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면 소통해야 한다. 남에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질러 논 마음의 빗장을 열면 서로 다른 색깔을 칠하지만 조화로운 작품이 나온다. 경남도의회가 경남도의 일방적인 행정기구 조직개편안에 제동을 걸었다.

 골자는 도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의 기능과 역할을 무시하고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한 사안에 대해 막아 선 것이다. 결국은 경남도와 의회가 서로의 소리를 무시해 불통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철이 들었다는 구름이 산등성이에 걸려 내는 소리는 영혼이 맑아야 들린다. 이 세상에 누가 이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지기지우(知己之友)는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에 얽힌 고사(故事)다.

 백아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거문고를 타면 옆에서 종자기는 알아차렸고, 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알아내고 감탄했다.

 자기의 소리를 영혼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많아야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 그렇지만 지음(知音)하기는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번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단풍이 전하는 소리와 낙엽이 구르는 소리를 들으려는 사람들을 많이 볼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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