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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을 이기는 “열려라, 참깨”
유혹을 이기는 “열려라, 참깨”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0.10.13 2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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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장
 “열려라, 참깨”라고 주문을 외우면 거대한 동굴 문이 힘없이 열렸던 이야기는 어릴 적에 참으로 신기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의 주인공 알리바바가 비밀번호를 대고 금고 속으로 들어가 엄청난 보물을 보고 기겁하는 걸 상상할 때는 참으로 신이 났다. 우리 앞에 막고 있는 어떤 어려움도 “열려라, 참깨”라고 외치면 스르르 사라지면 오죽 좋을까. 칠흑 같은 절망과 사투를 벌여온 칠레 광부들이 지하에 매몰된 지 69일 만인 13일 기어이 세상의 빛 속으로 나왔다 한 명 한 명 구조 캡슐을 타고 지하 700m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데는 약 20분이 걸린다. 그들이 지상에 첫 발을 디딜 때의 감격은 거대한 돌문이 열리는 상상보다도 더했을 것이다.

 

 사람에게 희망을 빼앗아 버리면 며칠을 살 수 있을까. 에리히 프롬은 사람을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s)라 했는데 ‘희망의 존재’라는 뜻이다. 밥을 먹지 않고는 여러 날 살 수 있지만 희망이 사라지면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혹 육신은 버텨 나갈 수 있어도 삶의 의미는 잃어버리게 된다.

 미국 뉴욕의 어느 냉동 창고에서 일했던 닉은 매사가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어느 여름날 저녁, 모두가 퇴근한 후, 닉은 보수 공사를 하던 중 냉동열차 안에 갇히게 되었다. 순간 닉은 공포에 사로 잡혀 분명히 얼어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구석에 있던 종이에 긴박한 상황을 적었다. “너무 춥다. 몸이 마비된다. 빨리 나가지 않으면 아마도 이것이 내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 글은 닉의 유언이 되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한 승무원들이 냉동 열차의 문을 열었을 때 닉은 구석에 쪼그린 채 죽어 있었다. 부검결과 동사였다. 그런데 경찰이 조사한 냉동열차는 전원이 꺼져 내부의 온도는 15도였다. 닉이 죽은 것은 냉기나 산소부족이 아니라 절망 때문이었다.

 33명의 광부가 깊은 지하에서 구조의 희망이 없었다면 69일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나 극한 상황에 내몰리면 포기를 하게 된다. 포기는 절망과 사촌으로 파우스트를 유혹했던 메피스토페레스의 속삭임이다.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것들은 몸과 마음을 파먹는 독수리다. 이것들의 특성은 지독해 아무 데고 희망이 붙어 있는 곳이면 다 갉아먹는다.

 전문가들은 매몰 등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 한계’를 72시간으로 보고 있다. 어쩌다 장기간 버티는 경우는 매우 예외적으로, 신체 대사량이 떨어져 호흡 등으로 소모되는 수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장기간 생존을 위해서는 부상이나 출혈이 거의 없어야 하며, 지나친 스트레스도 위험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69일 만에 한 명씩 지상의 빛 속으로 나온 칠레 광부들은, 희망의 주문인 “열려라, 참깨”만 잊지 않으면 거대한 돌문은 언젠가 열린다는 큰 교훈을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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