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8:10 (목)
단풍과 배추, 그 생존의 미학
단풍과 배추, 그 생존의 미학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0.10.06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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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시각
▲ 류 한 열 편집부장

설악산에 올 첫 단풍이 들었다. 단풍은 최저기온이 영상 5도 이하로 떨어지면 시작한다. 이제 단풍 행렬이 거침없이 남으로 치달을 것이다. 단풍은 겸손하다. 단풍은 기후 변화로 나무의 잎이 붉은빛이나 누런빛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주위 환경에 순응해 사는 게 나무에게는 생존이다. 닥쳐올 겨울을 대비해 사람이 보기에 아름답게 변신한 후 잎들을 떨어뜨린다. 버리면 홀가분하다. 버리려고 마음먹으면 단풍처럼 아름다워진다.

 산다는 것만큼 실존이 있을까. 배추 값이 연일 초강세를 이어가면서 무와 얼갈이 등 김치를 담글 수 있는 다른 채소류도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늘 대하는 배추김치가 이만큼 귀한 대접을 받을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요즘 따라 통배추 김치가 더 당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서울지역에서 한 사람당 배추 3포기를 시중가의 70%로 공급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씩 줄 서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배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배추김치를 안 먹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통계는 없겠지만 별 탈 없다.  

 동네 마트를 갔다 온 아내가 무 1개가 5천원이 넘는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 비싼 가격을 주고 사먹을 서민이 많이 없겠지만 5천원 때문에 입었을 삶의 무게는 아무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 말이 쉽지 배추나 무김치 안 먹고 뚝심으로 버틸 사람이 별로 없거니와 여하튼 가격이 정상적으로 돌아와야 할 터인데 당분간은 고공행진을 할 모양이다.

 그만큼 서민들의 마음이 허할 수 밖에 없다. 배추 민심이 흉흉해서 일까 인터넷에서는 배추 괴담이 떠돌고 있다. 가격 파동은 대형마트의 사재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퍼지고 있다. 그리고 중국산 배추는 분뇨를 거름으로 준 ‘똥배추’라 위생을 믿을 수 없는 말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 누가 여름철 폭염과 태풍ㆍ호우 등 이상기후 탓에 출하량이 줄어들어 가격이 오른 것이라고 하면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2년 전 미국을 3주 여행한 적이 있다. 도착 후 하루가 지나자 일행 중 한 명이 김치찌개가 간절하다며 한국식당을 찾았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타박했지만 빨간 김치 생각에 군침이 도는 데야 누구나 할 것 없이 이끄는 대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김치찌개파’ 덕에 여행하면서 가능하면 한국식당을 찾았다. 한국 사람만큼 자기 나라 음식을 먹는 데 목매는 민족도 있을까 싶다. 한국 음식 점심을 먹기 위해 차를 2시간 몰고 간 적도 있으니, 그 집착이야 과히 세계적이지 않은가.

 겸손을 단장한 단풍이 이 땅에 배추 파동으로 상한 마음들을 위로하러  하루 수십 Km를 달려 남녘으로 내려오고 있다. 생존은 위대한 것이지만, 생존을 위해 자기 몸에 있던 모든 것을 바꾸는 단풍을 보며 배추김치 파동이 주는 의미를 돌아볼 여유를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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