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4:04 (수)
영어로 얻는 것과 잃는 것
영어로 얻는 것과 잃는 것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0.10.04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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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시각
▲ 류 한 열 편집부장

영어 학습만큼 고비용 저효율도 없을 성 싶다. 요즘 아이들은 웬만하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영어를 배운다. 소위 말하는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시대다. 하지만 괜히 일찍 시작해 잃는 것이 많다.

 취학 전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우리말도 온전하지 못한데, 어렵다는 영어를 하려니 고통이 얼마나 클까.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의 마음에 새겨질 신 사대주의다. 영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선생은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다. 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한국에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이 교실에서 영어를 지도할 땐, 목에 힘이 들어가고 영어를 못하는 우리 아이들을 한심스러워 한다. 그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심어줄 영어 최고주의와 비뚤어진 가치관을 생각하면 하루속히 ‘영어 독립국’이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6년째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여선생을 알고 있다. 그녀는 미국에 돌아가 봤자 뚜렷한 일자리가 없어 한국에 머문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리고 갚아야 할 학자금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돌아갈 수가 없단다. 한국은 그녀에게 참으로 고마운 나라다. 그녀에게 가르치는 보람을 이야기 하라면 조금은 무례한 질문이 된다. 그녀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오직 삶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머무는 영어선생은 자질 검정을 요구 받거나 재교육을 받지 않는다. 오직 영어를 모국어로 쓴다는 태생적 이유 때문에 마음껏 돈벌이를 할 수 있다. 이런 선생들이 우리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영어를 배우는 우리 아이들이 글로벌 사고를 갖기를 원하지만 자칫 배움의 첫 대면에서 ‘영어 잘하면 최고다’라는 사고가 심겨진다.

 조기 영어교육을 원천적으로 반대하진 않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한다. 얻는 것보다 잃은 게 많다.

 많은 외국인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뜨내기다. 1년 계약으로 와서 계약이 끝나면 바로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만, 할 만하다 싶으면 재계약을 한다. 영어유치원의 한 달 회비는 만만찮다. 부유층 아이들이 영어유치원에 다닌다고 보면 된다.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그 아이들 영어가 나은 것은 불문가지다. 부의 대물림과 같이 영어 대물림이 일어난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영어의 강점을 가지고 초등학교부터 앞서 간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엔 원어민 선생이 심어 놓은 바르지 못한 사고의 틀이 걸려있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오른다고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영어학습의 고비용 저효율을 금전적 잣대만 두고 말한 건 아니다. 영어 구사 능력을 빨리 익힐진 몰라도 우리 어린 아이들에게 심겨질 왜곡된 가치관이 더 무섭다. 지금 유형의 잃음이 아니라 무형의 잃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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