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0:33 (목)
희망의 홀씨마저 빼앗는 사회
희망의 홀씨마저 빼앗는 사회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0.09.29 1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한열의 e시각
▲ 류한열 편집부장

먹고사는 문제는 성스럽다. 인류는 생존과 제사의식으로 출발했다. 초기 인류는 아침에 일어나 먹을 것을 찾아 헤매며 대부분 시간을 생존을 위해 보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원시종교 행위로 풀었다. 차츰 먹을 식량을 저장하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말하자면 생존하는데, 시간을 다 들일 필요가 없었다. 원초적 생존만을 위한 삶을 벗어나 내일을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생존이 치열할수록 그 현장에 승자와 패자가 극명히 갈라진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경우가 허다해 강자는 차고 넘치는데, 약자는 주린 배를 움켜지며 눈을 위로 뜰 수 없다.

 요즘같이 자본주의 발달의 최고점에서도 약자에 대한 배려는 별로 없다. 오히려 더 희생되고 삶을 송두리째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약자는 원시시대보다 더 생존을 위해 뛰어야 근근이 살아갈 수 있다. 발달한 금융제도가 내일의 희망을 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험한 곳으로 내모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지금 은행이나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내놓은 희망홀씨대출은 서민들에게 내일에 대한 작은 희망을 갖게 해 다행이다. 작년 3월부터 신용 7~10등급 24만 명의 서민들이 금리 연8~19%로 100만 원에서 2천400만 원까지를 빌렸다. 그 총액이 1조4천573억 원에 이른다. 족쇄 같은 고금리 카드론이나 사채에서 벗어나 내일의 삶을 그리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생존에 희망의 빛은 신성하다. 요즘 밑바닥에서 생존만 부여잡고 있는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에게 거짓 ‘희망’으로 돈을 착취하려는 대부업체들이 있다. 그들은 피를 요구하는 한국판 샤일록이다. 그들은 고리를 뜯기 위해 살 1파운드도 베어갈 사람들이다.

 사채업자들이 희망홀씨대출과 유사한 이름으로 서민들을 울리고 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보듬지는 못할망정  삶의 의욕마저 빼앗아 버리는 일탈행위다.

 현대인에게 부여된 ‘천형’과도 같은 신용등급이 7 이하는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경제생활에 제약을 받고 있는 터라 어떤 곳이든 손을 내밀고 싶을 텐데, 그들을 거짓 희망으로 내몰고 있다. 결국 연 금리 40%이상의 올가미를 씌워 벼랑에 서게 만든다.

 매일 길거리에 뿌려지는 명함판 대출 광고지는 ‘죽음의 초대장’이다. 하루마다 생존을 떠올리는 서민들에게 이 시대에서 희망을 피우기란 쉽지 않다. 그 한 장을 줍고 갈등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대부분이 승자 독식의 희생양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희망의 홀씨를 품게 하는 것이 진정한 친서민 정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