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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소장수 아들’의 상경 꿈
깨진 ‘소장수 아들’의 상경 꿈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0.08.29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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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취재본부장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사퇴 회견을 한 뒤 트위터에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라는 미묘한 소회를 남겼다. 이 글은 마오쩌둥(毛澤東) 어록에 나오는 ‘天要下雨, 娘要嫁人, 由他去(천요하우, 낭요가인, 유타거)’를 인용한 것이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고, 홀어머니가 시집을 가겠다고 하면 자식으로서 말릴 수 없다. 갈테면 가라”라는 뜻으로 방법이 도저히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강조한 것이다. 리더의 삶이 새삼 중요함을 일깨워준 사안이다. 소장수 아들 서울 상경기는 이렇다. 헌칠한 키, 잘생긴 외모로 광화문을 거닐며 손을 흔들었다. 그 반향은 무슨 대통령 후보도 아니고 건방지다는 것이다. 김 총리후보를 비롯한 2인, 즉 경남도청에서 회자된 3인방의 광화문나들이는 자신들의 뜻과는 달리 실패작이었다.

 또 아침은 청진동 해장국집, 점심ㆍ저녁은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자신이 ‘서민’임을 강조했다. 계란프라이를 태운 사진, 자신은 ‘덧니가 매력’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직접 올리는 등 소통에도 나섰다. 탤런트적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젊은 총리’, ‘서민 총리’란 수식어와 함께 중앙무대에 등단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소장수의 아들→국회의원 보좌관→도의원→군수→도지사’란 성공신화, 즉 코리안 드림을 즐겼다. 청문회 이전, 소장수 아들을 주창한 김태호 총리후보자의 서울 상경기다.

 40대 총리의 등장이 파격적이긴 하지만, 전례가 없던 일은 아니다. 이범석(1948년 47세) 백두진(1953년 44세) 정일권(1964년 46세) 김종필(1971년 45세)씨 등 이미 4명의 40대 총리가 있었다. 그들에 비해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아니다. 중앙에서의 정치경험이나 행정경험이 전혀 없다. 야당이 그를 ‘인턴 총리’라고 혹평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특히 경남에서의 군수, 도지사는 한나라당 공천만으로 당선이나 진배없다. 제대로 된 선출직이라 할 수 없다. 젊은 총리후보는 젊다고 생각이나 능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함을 기대할 수 있었다. 또 내각과 총리가 젊어졌다면 이념, 연령, 소득의 양극화에 대한 접근, 소통과 화합의 문제에서도 새로운 길을 기대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토니 블레어는 44세에 최연소 영국 총리가 되어 10년 동안 집권하며 “영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도 60년대 존 F케네디가 등장, 전 세계에 새바람을 불게 만들었다. 오바마도 47세에 미국 대통령이 됐다. 젊고 활기찬 지도자를 갖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능력이다.  일인지상 만인지하(一人之上 萬人之下), 왕조시대를 생각하면 큰 착오다. 총리는 헌법상 각료 제청권이 있고, 내각 통할권이 있다.

 그러나 과거 어느 총리가 헌법상 권한의 ‘100분의 1’ 정도를 독자적으로 행사했는가. 총리들이 행사하는 권한은 ‘진짜’가 아니다. 총리는 없어도 큰 문제가 없는 자리란 생각이다. 까딱하면 다음 날 대통령에게 곧 바로 경질 당한다는 자리다. 그래서 국무총리는 내정 발표가 나올 때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후보로 끝났지만 슬퍼할 일이 아니다.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높이고 준법의식을 준수토록 한 계기를 다졌으니 말이다. 총리를 대통령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삼는다면 난센스다. 모두가 실패했다.

 그러나 김 지사의 총리후보 발표 후 대선방향타마저 논의될 정도로 뜨거웠다. ‘젊은 총리’ 실험은 흥미로운 시험대가 될 것을 기대했지만 청문회를 통해 꾸겨졌다.

 선배를 제친 전력은 YS, DJ가 1970년대 ‘40대 기수론’이 신호탄일 게다. 총리 후보와 젊음, 선배들이 갖지 못한 어떤 장점을 가지고 도전하느냐를 지켜봐야 하는 것도 일순간에 그쳤다. 청문회 전, ‘젊은 총리, 서민 총리’가 청문회 후 거짓말쟁이, 썩은 양파, 걸레로도 비유됐다.

 그래서 정치판은 임명이 아닌, 자신의 쟁취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 키워준다고 될 일이 아니다. 결정적 하자 없음을 논하고 탓할 일이 아니다. “기회를 달라. 부족한 점 많지만 잘 부탁한다”는 것은 “부끄러움은 잠시, 실리는 영원하다”는 것을 취하려는 행동으로 비쳤다.

 김 후보의 사퇴의 변인 무신불립(無信不立), 혹독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로 삼아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허물어지려는 ‘공직자 도덕 기준’을 높인 계기로 삼자.

 아무튼 소장수 아들→총리후보, 서울 상경기는 허망함을 안겨줬다. 허망하다. 경남도민은 더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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