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1:40 (목)
이번 가을은 더 짧다
이번 가을은 더 짧다
  • 류한열
  • 승인 2010.08.25 21: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한열의 e시각
▲ 류한열 편집부장

    불볕더위가 한 발 물러섰다. 순식간이다. 매미 악쓰는 소리가 그렇게 귀에 거슬리더니 다시 들을 수 없다니 은근히 미안하다. 오는 가을은 여느 때보다도 반가울 것 같다. 연일 폭염으로 샤워를 했으니 선선한 바람 한 자락인들 오직 고마울까.

 가을은 한여름 수고한 사람에게 축복이다. 수확은 힘들지만 또 다른 ‘쉼’이다. 하지만 ‘가을에 수확한다’는 자연의 순리를 따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가을이 더 허전할 수 있다.

 요즘 대학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는 다이어트, 몸짱, 화장법 등을 알려주는 외모 관련 수업이라고 한다. 반면에 인문사회과학은 학생이 적어서 폐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외모에 목숨 거는 게 하루 이틀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은 놔두고라도 외모를 전부인양 여기는 젊은이가 늘어난다는 게 더 문제다. 외모 지상주의는 요즘의 문화 코드지만 과도한 다이어트와 성형 열풍은 자기 관리라는 외피를 쓰고 휘두르는 삶의 깊이를 파괴하는 행위다.

 어느 대학의 화장법 강의 실습시간에 들어오는 수강생 중 3분의 2가 남학생이었다. 남학생이 속눈썹을 집어올리고 눈썹을 정돈하는 걸 보면 징그러울 것 같기도 한데…. 얼짱, 몸짱에만 매달리는 요즘 젊은이를 보면 이 가을이 길어야 할 이유가 없다.  

 10명의 내각 후보 인사청문회를 쭉 보면서 그 누구에게도 인간적인 흠모를 둘 수 없다는 게 이 가을이 길 필요가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일단 모든 후보들에게 의혹을 두고 시작한 인사청문회였지만, 누구 할 것 없이 똑같다는 평범한 진리가 이번 가을을 또 짧게 할 것이다.    

 젊은이들의 병적인 외모 치중과 기성세대 특히 고위층의 심각한 도덕성 해이는 ‘한여름 날의 광기’였다고 여기며 가을의 문턱에 오르고 싶다.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시간에 여름날 흩어놓았던 일그러진 삶의 편리들을 주워 모아 바루었으면 한다. 광기의 춤은 한때에 족하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결코 외모 우월주의나 회색빛 도덕성은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없다.  

 가을은 우리 정신과 영혼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인문학 책 한 권으로 행복할 수 있고, 시 한 구절로 마음에 무한한 감사를 담을 수 있다. 여름 동안 피폐한 마음을 추스르고 무의미로 타들어갔던 삶에 의미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다. 뙤약볕 아래 갈라졌던 마음 밭에 시원한 물길을 댈 수 있다. 인생의 내리막길을 가든, 오르막길을 가든 이번 가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왔으면 좋겠다. 행복은 결코 지금 무엇에 좌우되는 게 아닌 지금 행복을 선택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이번 가을이 대답해 줬으면 좋겠다.

 어제까지 화염방사기 같이 열기를 뿜던 태양이 ‘화’를 거두고 우리에게 베푸는 길지 않을 오는 가을에 잃어버린 고향과도 같은 내면에 착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