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1:21 (금)
범법 행위를 사회적 합의로 풀 수 있나
범법 행위를 사회적 합의로 풀 수 있나
  • 류한열
  • 승인 2010.08.19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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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의 e시각
▲ 류한열 편집부장

    `주머니 털어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 (Everybody has a skeleton in his closet.) 국립 대학에서 범죄윤리학을 가르치는 김 교수가 집에서 늦장을 부리다 오전 10시 강의를 맞출 수 없게 됐다. 그는 학생들을 실망시킬 수 없어 최대한 빨리 강의실에 도착하려고 웬만한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차를 몰았다. 10분 늦게 허겁지겁 수업을 시작했지만, 김 교수는 `윤리적 측면에서 범죄자 선도 방법`이란 강의를 하면서, 수업 시간 내내 여러 차례 교통법규를 어긴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교차로에서 한두 번 빨간색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차를 몰아본 경험이 있다. 그럴 때 안전하게 지나갔으면 다행이고 혹 가로 지르는 차와 아찔한 순간이 있었으면 십년 감수했다고 여긴다. 교통신호를 무시해 사고를 내 사람을 죽이면 과실치사 행위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인사청문회에 나오는 10명의 `스타`는 지금 죽을 맛이다. 이들이 청문회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고 어떤 답변을 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판가름 난다. 지금 10명 모두에게 야당은 의혹을 두고 있다. 주머니 털어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실증했다. 그 의혹 가운데 부풀어진 것도 있고, 그 의혹이 청문회 통과의 최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처음 말갛던 하늘에 한 점 두 점 먹장구름이 드리우는 형국이다. 그 먹장구름이 늘어나 큰 비가 되면 낙마하는 것이고 먹장구름 한두 장으로 그치면 살아남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전에 큰 비가 되었던 먹장구름이 요즘은 비를 만들 지 못하는 게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위장전입 문제가 불거졌다. 10명의 후보 중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현동 국세청장,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에 이어 민주당에서 뒤늦게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의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해 4명이 되었다. 위장전입은 인사청문회에서 늘 거론되는 `단골 범죄행위`다.

 지금 한나라당 일각에서 위장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위장전입은 분명히 잘못이지만 위장전임의 시기나 정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면 옳은 얘기다. 하지만 민주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안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총리 후보 2명을 위장전입의 잣대로 낙마시켰던 한나라당이 집권 후에 태도를 바꾸는 데 야당이 펄쩍 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위장전입은 이제 교통법규를 어기는 것보다 더 보편화된 법죄행위다. 자식을 나은 학교를 보내기 위해 이사하는 수고로움을 어느 부모인들마다하겠는가. 하지만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거짓 주소지로 옮기는 행위는 왠지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누구에게는 철퇴를 가한다면 그것도 맞지 않다. 처음 청문회에서 위장전입한 후보자를 보고 분개하던 국민들이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위장전입 전문가라는 걸 알고부터 이 범죄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하기야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후보시절에 이 문제에 자유롭지 못했으니 지금에서 면죄부를 주자는 게 타당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일반인은 매년 수백 명이 이 범죄로 처벌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더욱더 이 문제를 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털어 먼지가 계속 나면 계속 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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