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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 당선자님, 도민들은 완장문화를 싫어합니다
김두관 당선자님, 도민들은 완장문화를 싫어합니다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0.06.20 2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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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칼럼 취재본부장

완장 1, 당선자 인식이 문제다

 김두관 경남지사 당선자가 야권후보 단일화 추진단체의 해단식에 참석, “‘완장 찼느냐’는 오해도 받지만 우리 쪽 사람들은 그런 기회를 가져보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인수위원회에 야 3당과 시민사회, 선대본부 사람들을 많이 참여시킨 것을 두고 의식한 말이다.

 이어 “2년 후, 4년 후 더 많은 사람들이 제도권에 가서 직접 책임을 지고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인수위 참여는 훈련이라고 생각한다”며 “언론에서 비판할 것이라는 예상도 감수하고 인수위원회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11일부터 경남지사직 인수위가 가동되고 있지만 사상 첫 야권 수장이 탄생, 잔뜩 긴장한 경남도청 직원들로부터 기대 이상으로 후한 점수도 받고 있다.

 그러면 왜 김두관 당선자는 언론에서 비판할 것이란 선입견을 갖는지가 의문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대척점에서 뭘 노렸다면 천부당만부당한 발상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완장 문화에 적극 대처할 것’을 주문한 일을 되뇌게 했다.

 당시 모르긴 해도 노 대통령의 ‘완장 문화’는 언론(일부 신문)과 그 보도 태도를 두고 한 것일 게다. 그 유력 신문들은, 말하자면 기득권 세력이지 완장을 찬 소설 ‘완장’이 주인공이 아니다.

 언론은 원래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기능이 우선이다. 그걸 빼버리면 이미 언론이 아니다.

 또 당시 ‘완장 문화에 대한 도전’ 자체가 ‘2002년 신세력’의 정권 재창출과 사회적 가치, 질서의 전면적 개편을 위한 정지 작업이라는 궤를 함께한 면이 더한 인상도 남겼다.

 이는 불공정한 사회구조 때문에 영구적 약자로 운명 지어진 사람들도 사회주력이 될 기회를 가져야 공평한 세상이란 믿음도 한 몫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세상을 극단적 대결장으로 인식하는 한 투쟁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오히려 독선적인 정의감이 더 위험하다. 하루아침에 둘러엎어진 세상은 다시 격렬한 파괴를 수반하면서 반동과정에 들어선다는 것을 역사는 가르쳐 왔다.

 그래서 변화도 천천히 착실히 이뤄져야 진정한 변화를 깨달을 일이다.

 완장문화를 들춘 것은 김두관 당선자가 행여나 하는 염려에서다. 경남도정의 수장이지만 지사자리란 것이 행정적 측면이 우선한다. 따라서 경남도민들은 정치인보다는 행정가 김두관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선거에서 진 여당만의 몫이 아니다.

 큰 뜻을 찾아 행동하지 않으면 민심의 물결은 급변한다. 정치적 논쟁으로 빗나가게 되면 본질은 사라지고 도민들로부터도 증오서린 비판만 끓게 만들 것이다. 권력을 쥔 자가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금물이다.

 권력이 무엇보다 경계할 것은 지지세력 속의 완장문화다. 맹목적 편 가르기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조직의 보스가 아닌 리더가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리틀 노무현이 아닌 자이언트 김두관으로 성장하고 불리길 바란다.

   완장2, 완장이 걱정된다.

 무작정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비의 습성은 무모한 행동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부나비들은 무슨 이유로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일까. 권력 주변에 부나비 같은 권력 브로커들이 모여 설쳐대는 것은 권력이란 완장 때문이다.

 6ㆍ2지방선거 후 단체장이 뒤바뀐 지역에서 권력이동의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경남도, 김해시 등 사상 첫 야권 수장이 탄생했거나 당선이 유력하던 후보가 낙선한 지역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역 단체장이 패한 곳을 중심으로 지방권력교체에 따른 인사 후유증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또 공직자들은 괜스레 걱정이 잦다. 이를 틈타 당선자들의 측근 중에서 권력을 잡은 위세로 공직사회의 질서를 흐트러지게 할까봐 걱정이다. 또 한자리를 노리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인사들이 설치고 다니면서 공무원들의 동요는 더하다.

 이런 가운데 도청에는 벌써부터 정무부지사, 비서실장은 누구다. 또 출연출자 기관장자리다툼도 들리고 공직사회에서는 당선자와의 인연을 강조하는 등 학연ㆍ지연ㆍ혈연을 동원하려는 움직임도 잦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오죽하면 김두관 당선자가 인사 청탁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한다고 강조했을까.

 또 관권 선거, 돈 선거 시비가 불거졌던 A자치단체는 ‘살생부’ 등이 나돌면서 공무원 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그 틈새를 부나비들이 끼어들고 있다.

 벌써 경남도청에는 각 실과를 찾아 도지사 당선자를 들먹이는 부나비의 내방이 잦다. 즉, 완장을 찼으나 알아서하라는 암시일 게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은 권력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암울한 역사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지만 아직도 완장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소설 ‘완장’은 서 푼짜리도 안 되는 완장의 힘을 등에 업고 천방지축 날뛰며 안하무인으로 설쳐대는 주인공을 통해 잘못된 권력이 낳는 부작용과 병폐를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완장을 잃고 모든 걸 잃은 주인공 임종술에게 술집 작부 부월이가 들려주는 말,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라고 했다.

 작든 크든 권력을 쥐면 휘두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물근성을 질타하는 말이다. 어떤 자리에 오르는 것은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하라는 것이지 권력을 남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또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염상구도 마찬가지다.

 완장(청년단장) 하나 차고 나서는 세상이 자기 천하다. 완장 찬 염상구가 평소 침 흘리던 외서댁을 범했으니 사랑도 완력으로 얻었다 할 것인가.

 하지만 그가 빼앗은 건 외서댁의 몸이었을 뿐 어찌 마음까지 앗을 수 있었으랴. 완장이 사람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요즘 폭력배는 어김없이 몸에 문신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신은 힘없는 사람들을 윽박지르고 과시하는 이미지가 짙다. 몸에 직접 새긴 완장이다. 결론적으로 정치권력에 의한 완장의 폐해가 가장 많고 수두룩하다.

 ‘완장의 폐해’는 어느 시대, 어느 정권에나 있었다. ‘문고리 권력’을 빌려 완장들은 거들먹거리는데 그치지 않고 한 몫 챙기려 한다면 부정부패로 이어질 가능성도 짙다.

 완장은 권력적 힘을 이용,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월권, 편법, 부당하게 일을 처리하거나 강자에게는 굴종, 약자에게는 군림하여 조직의 기강과 합리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탓에 없어져야 할 대상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무소속이든 이런 완장들을 멀리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이고 경남도민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요즈음에는 완장을 두르지 않고 또 직위에 상관없이 권력적 힘을 가지고 설쳐 대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을 완장이라 부른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아니하든 완장 찼다고 으스대는 꼴, 이젠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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